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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주 Oct 18. 2020

요가하는 이유

연재 프로젝트 #10

좀 오래전, 스님이 운영하는 요가원에 다닌 적이 있다. 수강생이라곤 나와 다소 수척해 보이는 아줌마 딱 둘 뿐. 무모하게 등록한 새벽 4시 반 클래스는 아주 쉬운 동작 몇 개가 전부인데도 오후에 하는 수련보다 늘 힘에 부쳤다. 

클래스는 새벽반과 오전, 오후반이 있었지만,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새벽 반 달랑 하나였다. 수강생 수가 적은 탓에 한 겨울에는 벽에서 흘러나오는 한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혼자 수련을 할 때도 더러 있었다. 

그 요가원은 정말이지 누추하기 짝이 없는 데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어두침침하고 창문 하나 없는 누르스름한 외벽에, 석가모니가 그려진 기이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제야에 묻혀 있는 도인의 공간 같았고, 또 어떻게 보면 완전 사이비 종교의 예배당 같기도 했다(사실 영화 ‘사바하’를 보고 신흥 사이비 종교로 여겨지는 ‘사슴 동산’이 이 곳이 아닐까 살짝 의심해보기도 했다). 

공기의 결마저 청결한 현대적인 다른 요가원을 뒤로하고 그곳을 간 건, 오컬트적인 분위기가 궁금증을 일으킨 탓도 있지만 사실 지푸라기라도 움켜쥐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요가를 하면 내 시끄러운 마음이 조금은 잠잠해질까. 

뒤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우울과 무기력 속으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일상의 반복이었는데 그렇다고 하여 딱히 손에 잡힐만한 인생의 쓴 맛을 느끼고 있던 바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시련의 아픔 정도라고 할까. 지금에야 누구나 앓고 가는 독한 감기 같은 한 철이라 여기지만, 그땐 세상에서 내가 제일 애틋했고, 내가 제일 힘들었다. 

마음이 어지러웠던 그때, 그 투박하고 군더더기는 하나 없는 그 요가원의 상호가 눈에 들어온 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땅한 홈페이지도 없이 블로그로 괴팍하게 운영되고 있는 그곳은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노골적으로는, ‘도를 아십니까’ 같은. 저곳에 다닌다면 필시 나는 참선을 하거나 다단계에 포섭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 몰라. 설마 죽기야 하겠어.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면(‘curiosity kills the cat’이라는 서양 속담에서 차용한 말), 호기심은 하현주를 요가하게 했다. 한 겨울, 4시 20분이면 이만 간신히 닦은 채 그곳으로 갔다. 새벽 한기에,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마음에 온갖 것들이 다 미웠다. 

지독히도 못난 마음을 품고 간 요가원에는 늘 선생님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스님이었다. 빡빡머리에 늘 승복차림. 가끔 목에다 묵주를 둘렀고 지독한 절 내음이 나는 향을 피웠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얼굴, 중키에 아주 다부진 체격. ‘신과 함께’의 웹툰 작가, 주호민이 떠 오른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무척이나 진지한 사람이었다. 

이따금씩 나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몇 년도 생인지, 직업은 뭔지. 형제는 어떻게 되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그러다 훅 찌르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교사는 현주 씨를 죽이는 직업이다, 태생적으로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변덕이 있는 데다 전체적인 몸의 밸런스가 깨져 있어 꾸준히 수련을 해야겠지만, 토끼 같은 성향 때문에 오래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끔 미련 맞은 구석이 있어 주변 사람 속 터지게 한다... 

들어서 기분 좋을 얘기들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성격이라 스님은 엉터리,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수련이 끝나도 여전히 동트기 전 6시. 어깨 서기를 7분 정도 하고 난 내 몸은 아주 깊은 곳으로 침잠해 버려 집으로 돌아가는 행위 외에는 만사가 다 귀찮아 따지기도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했던 말들이 아주 없는 말도 아니었고.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요가원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그리고 꾸준히 수련을 했다. 아마도, 내가 변덕스럽다는 말에 오기가 났던 것이리라.  게다가 스님은 그렇게 던지는 몇 개의 질문 외에는 전혀 귀찮게 하는 것이 없었다. 나의 환심을 사려는 노력이나 다음번 등록을 위한 겉치레가 전무하다는 점이 이 요가원의 큰 장점이었다. 좋은 운동복을 입을 필요도 없었고, 화려한 자세로 사람을 기죽이는 일도 없었다. 그저 우리는 수련이 끝나고 나면 아주 남남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뿔뿔이,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일상 속으로 흩어져 갈 뿐이었다. 고독하긴 했어도 단출했고 충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살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 준 공간. 

하지만 기어코 그만두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갑작스럽게. 마지막으로 가던 날까지도 그다음 주 수련을, 다음 달 수련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또 그렇게 중도 포기자가 되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성격인지, 나는 매사에 늘 그런 식이었다. 불편함이 느껴지는 순간, 혹은 밑바닥을 들켰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관계에서 사라져 버리곤 했는데(잠수까진 아니지만), 그 대상에 이 요가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망쳤다.  

마지막 수련 날은 내가 요가를 다닌 지 벌써 두 계절이 지나, 요가원에 이제 막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여느 날과 별다르지 않았다. 매번 같은 시퀀스라 눈을 감고도 해낼 수 있었고 수업 막바지의 명상만 남긴 상태였다. 이때가 되면 그래도 오늘을 이겨냈다는 생각과 나에게 집중할 수 있음에 마음이 평화로워지곤 했다. 하루 중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명상을 한참 하고 있는데, 스님은 그날따라 내 앞으로 와 최대한 편안하게 앉아보라고 했다. 이미 편한 상태로 앉아있었는데, 그에겐 그리 보이지 않았나. 여러 번 재촉한다. 손은 왜 그렇게 했냐, 머리가 기운 것은 알고 있냐. 

저, 편한데요- 

의도와는 달리 다소 날카롭게 나간 내 목소리에 조금 놀랐다. 후회의 마음이 몰려오고 상대편에서 대꾸마저 없으니 괜히 무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실눈을 뜨고 스님을 바라본,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 몇 초의 사이. 스님이 말했다.

편안해본 적이 없어서 편안한 게 뭔지를 모르는 거야. 

연민도 동정도, 분노도, 그 어떤 감정도 없는 아주 무심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별것 아닌 몇 마디에 갑자기 심장이 쿵. 자기 연민인지 아니면 혐오인지, 복잡하고 다단한 층위의 감정의 폭발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 좀 봐달라는 것도 아닌데, 힘들다고 청승 떨 마음은 추호도 없는데,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져 나와 정신없는 와중에도 무척이나 창피했다.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회원. 이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여겼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와 그때 일을 돌이켜본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 무너지고 말아 버린 건, 그즈음 몇몇의 사건들이 아주 묘한 방식으로 내 삶을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편하지 않다는 연인의 마지막 말과 그즈음 용하다는 사주쟁이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자기는 부자연스러워. 힘 좀 빼고 살아.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고도 아는 척, 있고도 없는 척, 없고도 있는 척, 좋아하면서도 안 좋아하는 척, 안 좋으면서도 좋은 척, 착한 척, 괜찮은 척, 안 괜찮은 척. 강박 속에서 많은 것을 숨겨온 삶이었다. 완벽한 세팅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억지와 환상이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걸까. 어느 날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내가 벅차다고 했다. 길을 잃고 혼자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 상대의 괴로움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성향과, 그럼에도 이해하는 척했던 위선과, 그 속에서 스스로에게 도취된 채 나는 달라, 라는 식의 우월감을 세상천지에 들켜버린 것 같았다. 나의 지나간 연인에게, 친구에게, 엄마에게, 하물며 나와 몇 마디 하지 않은 그 요가 스님에게 마저. 내가 얼마나 작고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아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대면하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 아주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그것이 진짜 요가의 시작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그곳에는 차마 돌아가지 못했다. 그럴 용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스님의 요가원은 자리를 옮긴 건지, 아니면 영영 사라진 것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대신 지인의 추천을 받아 광화문의 한 가정집을 개조한 요가원을 다니게 되었다. 작고 따뜻하고 아늑한 곳이다. 이 곳의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요가 수련 도중, 우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별 것 아닌 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는, 그래서 머리 서기를 하다가도, 쟁기자세를 하다가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 사람들의 정수리에 그 눈물이 고일 때가 있다고. 눈물을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때문에 우리는 그저 그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왠지 이 말을 하는 지금의 요가 선생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린 건 아닐까, 하는 부끄러운 마음에 우스갯소리로 얼버무린다. 

아~ 그러니까, 현주가 지금 화가 났구나, 현주가 지금 눈물을 흘리고 싶구나, 하면 된다는 거죠?

선생님은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하다가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하고 너털 웃는데 그 순간 현주 씨는 편안해 본 적이 없다는 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그제야 그게 나를 질책하는 말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문득 그 사이비 종교 수련장 같던 거무축축한 요가원이 그리워졌다. 


[에필로그

물론 요가를 해도 이따금씩 머릿속이 시끄러워지고 여전히 마음이 서늘해지는 때는 있다. 방심하는 순간, 나의 아직 미성숙한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이를테면 지난주 금요일 같이. 요가 가는 길이 너무 막혀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와 쌤, 길 너무 막혀요. 와 완전 짜증 나!

하드웨어는 삼십 대 중반인데, 소프트웨어가 칠십 대인 요가 쌤이 거룩한 형상으로 앉아서 한마디. 

그럼, 현주가 다니는 길은 다 뚫려 있어야 하나? 그건 욕심이야.

아...... 또 한 번의 깨달음의 순간이 오긴 왔는데, 그와 거의 동시에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생각도 머릿속에 함께 스친다.

‘내가 이 말했다고, 또 어깨서기 10분 시키는 거 아니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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