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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주 Oct 18. 2020

어느 토요일 아침에 그냥 갑자기

연재 프로젝트 #11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애틋한 마음은 시작됐다. 이를테면 그가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메모의 뭉툭한 글씨가 살짝 귀여워 보였다든지, 음악 취향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마저 떡 볶이였다든지, 그날따라 햇빛이 유난히 말간 그의 얼굴을 더 싱그럽게 물들였다든지, 기다리고 있다는 답장이 갑작스럽게 내 마음 어딘가를 울렸다든지, 하는.

이렇게 마음은 지극히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늘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신경 쓰이기 시작한 그의 무심한 습관에 혼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애정이 더욱 깊어지곤 했다.

‘이럴 땐, 눈을 자주 깜빡이는구나.’ ‘피곤할 땐 말이 없어지네.’ ‘미소가 상냥해.’

그의 작은 몸짓들이 소중하여 잠깐 얼굴을 보고 집에 가는 내내 몇 번이고 되뇌어 보는 것이다. 나중에 조금 시간이 흘러, 조금 덜 쑥스러운 사이가 된다면 ‘네가 이럴 때, 이런 행동을 해.’라고 무슨 근사한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요즘 들어 문득 생각나는 그는 무척이나 상냥하고 진실하다. 촌스럽게 마음만 앞선 배려 없는 솔직함이 아니라 결코 가볍지 않고 단단한 진실함이었다. 무리 속에 있을 땐 아주 작아 보이다가도 또 어느 순간 나를 움츠리게 하는 깊은 눈빛으로 놀라게 했다.

그러나 역시 그런 많은 반짝임 속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예쁜 웃음이었다. 잘 웃는 편이었는데 그럴 때면 귀엽게 살짝 어긋난 치아가 입술 사이로 앙증맞게 드러나곤 했던 것이다. 눈과 코와 입, 그리고 뺨이 동글게 포물선을 그리는 순한 미소였다. 그 미소 안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살아온 자취, 그리고 신념 같은 것은 자신의 얼굴에 겹겹이 쌓인다. 박색이냐 아니냐를 떠나 전반적으로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인상과 분위기는 생각보다 상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칼을 대거나 주사 바늘로 이 곳 저곳을 수정 삭제한 얼굴까지 알아볼 순 없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젊음을 소중히 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가 얼굴을 통해 드러났다. 그는 차분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순간을 다정히 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늘 취약한 내가 끌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좋아하지 않기란 언제나 쉽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를 늘 부족한 듯 본다. 참아야 할 것도 많고, 할 수 없는 말도 많고, 한참 동안 공을 들여 쓴 이 글도 발행하기 쑥스럽다. 그렇지만 괜찮다. 나는 작게 행복하여 지금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여 욕심은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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