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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주 Oct 18. 2020

교사로움(Are You Teachable?)(1)

연재 프로젝트 #12

어떤 사람들의 운명은 손바닥을 뒤집듯 순식간에, 그리고 이렇게나 쉽게, 영원히 그 전과는 다른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전 직장을 그만 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내 인생을 교사로서의 가능성에 내어 준 적이 없었다. 이십 대의 패기로, 사표를 결심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직업을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기에 뭔가 그럴듯한 보이는 넥스트 스텝이 필요했다. 그리고 교사가 된다는 것은 나의 다소 충동적이여 보일 수 있는 사표를 정당화 해주는 구실처럼 느껴졌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 직업은 선호도 1위이자 여자에게 가장 좋은 직업이라 알려져 있지 않은가.

부모님은 학부시절 내내 현주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 분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교사가 되는 것은 마치 쉬운 길만 걷고자 하는 타협이고 위선인 것만 같아 줄곧 저항을 해왔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합리화의 동물이지 않은가. 과도한 업무에 지쳐 있던 나는 비겁하게도 사표 이야기를 꺼내며 그 기억을 소환했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 말이 맞았던 것 같아요. 교사를 하고 싶으니, 회사를 그만둘래요.”

그때 부모님의 반응을 요즘 말로 하자면, 갑분싸 정도. 아마 큰 의심과 그보다 더 큰 희망으로 철부지 딸의 결정을 받아들이셨으리라. 아니 받아들이셨어야만 했으리라.

물론, 단지 버거운 현실을 모면하기 위한 선택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매력적이었던 건, 교육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내 돈을 벌기 위해 약간의 사기와, 약간의 기만을 섞는 그런 얄팍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무엇인가 숭고하고 고귀한 것, 타인을 위해 나를 내어주는 것, 작지만 구체적이고 아주 따듯한 영향력을 뻗치는 것, 그것이 교육이고 교사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초에 동기가 이토록 미약하다 보니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내가 가진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에 대해 의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다느니,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한 은사를 닮고 싶다느니 하는 드라마틱하고도 감동적인 미담들이 난무했다. 나에겐 엄청난 간절함도, 그럴 듯한 스토리텔링도 없었는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단지 회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유예기간을 택한 것은 아닐까?

이번에도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하지.

나는 또 도망치려고 하게 될까.

막상 선생님이 꿈이었다가도 교생 기간에 학을 떼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갖가지 질문들이 나를 압도했다. 대학원에 들어가 서른을 맞이했기 때문에 이미 한참 늦은 탓도 있었다. 사범대를 나온 학생들은 스물 넷, 다섯이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어린 교사들에 비해 큰 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가 이 일에 대해 소명의식을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충만함을 느끼지 못하는 삶, 껍데기만 남은 삶, 아이들이 지긋지긋해져 짜증만 달고 사는 그런 삶. 두려웠다.

우스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안들이 나의 교사가 되는 여정을 연장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간은 무심히 앞으로만 흘러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대학원 생활에 졸업이라는 마침표가 찍혔고, 동시에 교원자격증도 주어졌다. 그리고 서울 소재의 모 사립 고등학교의 첫 수업으로 그 교실에 들어서는 그 날이 마침내 와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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