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소연 Feb 17. 2022

영화관 풋잠

나의 독서 모임 커뮤니티

 책을 혼자 읽는 것이 외로워지면서 독서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체계적인 트레바리 모임, 아그레아블 모임, 소모임 어플에서 만난  라벨 사람들. 모두 소중한 추억들이지만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피로감을 끼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사실 모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격 때문이라기 보다는  문제 때문이었다. 나를 너무 드러낸 것은 아닌가, 타인의 의견에 끌려간 것은 아닌가, 그때  그런 말을 했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규모 독서 모임일수록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던 것 같다. 책보다는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 신경을 썼던 이다. 예민하게 보이지 않기, 대세 의견 따르기, 은은한 광기 들키지 않기. 때문에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을 뿐이었다. 그러다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의 소개로 영화관 풋잠에서 이루어지는 독서모임에 참여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함께 읽고 있다는 연대감을 느끼게   계기가 되었다.

 이문동 중랑천 옆에 알록달록 원색의 작은 건물이 하나 있다. 1층엔 노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드립’이라는 아주 작은 카페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영화관 풋잠이 나온다. 바로 이곳이 독서 모임이나 영화 모임 등 다양한 문화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커피숍 안에 이어져 있는 영화관이라니. 독립적이기도 한 듯하면서 연결되어 있는 ‘따로 또 같이’식의 구조가 모임을 운영하는 대표님의 철학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다소 가파르고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아늑하게 좌식으로 구성된 공간이 나온다. 대략 3평 정도 되려나. 편안한 소파형 의자가 놓여 있고 경우에 따라 가운데에 앉은뱅이식 테이블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8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앉으면 딱 적당할 크기. 우리는 거기에 모여 읽은 책에 대해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객원 멤버들이 참여하면 모임의 인원은 들쭉날쭉 하지만 코로나 인원 제한을 지켜 모이는 가운데 4명 혹은 6명이 낮은 조명 속에서 책에 대해 나누는 시간은 지극히 평화롭다.

 이 독서 모임을 다니면서 세워 본 가설이 하나 있다. 따뜻하고 어두운 조명이 토론을 하는 데 있어 안정감을 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경향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책 모임을 할 때 리더에게 주어지는 부담스러운 역할이 있다면 과열되거나 갈등 양상을 보이는 토론자를 저지하고 분위기를 완화시켜주는 것이다. 타 모임에서는 종종 이야기하다 보면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소재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재미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대화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풋잠의 모임에서는 자발적으로 건강한 대화 문화가 형성되어 있어 그런 역할에 대한 무게가 덜한 편이다. 그렇다고 대립이 될만한 소재를 피하는 것도 아니었다. 페미니즘은 종종 다뤄지는 소재인데 전혀 불편하거나 위험하다는 느낌이 없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만 오는 것인지, 아니면 편안한 소파와 조명이 경직된 마음을 풀어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맘대로 후자에 한 표를 던져본다. 몸이 편해야 마음도 여유로워질 수 있다는 바람을 담아서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독서 모임을 하는 연령층이 다양하다는 것에 있었다. 기존에 다녔던 모임은 2030들이 주축이 되었다면 이곳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독서 인구가 드나들고 있다. 젊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는 모임의 장점도 분명 있겠지만 이런 만남은 많은 경우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특히 ‘책’을 매개로 연대하고자 하는 성격이라면 특정 연령만을 대상으로 하는 규칙은 다양한 시각을 배제할 수 있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에 빠지게 된다. 또한 2030만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독서모임은 ‘책’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으로써 다뤄지고 있는 경우도 많았는데 물론 그런 것이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찾던 모임의 형태는 아니었다. 반면 풋잠의 구성원들은 다양했다. 대학생, 대학원생, 스타트업 창업자, 교사, 여행가 등 다양한 직업군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느슨한 연대 속에서 안정감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풋잠의 독서모임은 규모가 굉장히 작다. 모두 모이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4명에서 8명 정도. 게다가 한 달 한 차례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깊이 있게 읽을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 책은 문학과 비문학이 적절히 섞여 선정되었고 참여하는 멤버들의 취향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모임은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록 마진이 잘 남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규모를 크게 하는 경향이 있다. 물리적인 공간에서 대면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기회는 소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모임에 몇만 원을 부담 없이 내니 말이다. 물론 이런 경향성은 코로나로 인해 법적인 규제가 생기면서 달라지긴 했지만 시국이 끝나는 대로 더욱 융성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모임의 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풋잠의 운영 방식은 소규모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때론 느슨하게 때론 팽팽하게 연대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는 종종 새벽을 넘기곤 했다. 치열한 지적인 사유와 토론의 장에서 잃었던 인문학적 인간상을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물론 이런 것이 착각일지언정, 공감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었다. 나를 온전히 받아주고 있다는 연대감은 이 모임이 다른 공동체에 비해 강하게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지금 부모님과 함께 분당에 살고 있다. 분당에서 단지 이 독서모임을 위해 이문동에 갈 때마다 너무 멀다고 느끼지만, 이상하게도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잘 다녀왔다는 생각을 한다. 작은 것의 큰 힘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인스타그램 : @theater_puppynap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외대역도로 4길 48


매거진의 이전글 서향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