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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소연 Aug 19. 2024

세기의 경계에서, Y2K

프롤로그

1992년 10월 28일 휴거일을 다룬 당시의 뉴스 생방송

세기말의 기운이 드리우면서 종말에 관한 소문들이 빠르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에는 어딘가 음침하고 찝찝한 구석이 있었지만, 기어코 들춰봐야 직성이 풀렸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지구 종말론이나 종교단체들의 시한부 종말설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그저 허황된 것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현실에서도 기괴하고 오컬트적인 사건*이 이따금씩 일어났고 뉴스는 툭하면 '세기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불안을 조장했다. 그러나 그 공포의 대상은 피부에 와닿는 실체 없이 모호했다.    

일상 속에 잠겨 있는 최후 순간에 대한 불안은 그간 우리가 살아온 환상이 중첩된 삶과 앞으로 도래하게 될 오직 현실만 존재하는 세상을 교차시키고 있었다. 이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무엇이든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욕망이 들끓는 세계로 나아갈 터. 그러나 아직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고 우리는 귀신을 부른다는 분신사바 주문이나 말세론과 같은 비과학적인 것에 마음이 빼앗기는 돈키호테적 작은 인간들일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세기말 종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보다는 지루한 현실에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흥미로운 이벤트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이미 한 차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다미선교회의 휴거 논란(1992)*이 있은 후였기 때문이다. 


시한부 종말론

1992년 10월 28일. 지도자가 말한 휴거의 날이 도래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 후, 천국으로 사라질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1999년 대종말이 올 때까지 이 땅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이었다. 구원을 위해 재산을 교회에 모두 헌정한 사람들도 있었고 갓난쟁이를 데리고 지방에서부터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 진지한 신도들의 모습과는 달리 교회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과 시민들의 얼굴에는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이 떠돌고 있었다. 생방송으로 시시각각 휴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 비친 예배당은 광기와 비이성이 잠식한 기묘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신도들 모두가 흰색 옷을 입은 채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노래를 부르거나 두 손을 모으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방언 기도 중이었기 때문이다. 선택받기 위한 뜨겁고도 간절한 부르짖음은 그토록 간절했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영원 같은 시간이 흘러 휴거는 두 시간 후로, 한 시간 후로 다가오고 있다. 휴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마음속에 밑져야 본전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만 분의 일 확률로 휴거가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드디어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함께 포개지는 그 순간이 도래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자정이다. 어느 누구도 하늘로 날아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무심한 밤. 시간은 무심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고 자연은 전과 같다. 휴거설을 주장한 지도자조차도 끝내 자신을 저버린 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Y2K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다미선교회의 일로 지구 종말설은 영영 힘을 잃었다. 대신 조금 더 '과학'(?)에 기반한 소문이 그 위상을 대체했다. 바로 '밀레니엄 버그'라는 Y2K였다. 내용은 이랬다. 컴퓨터 날짜 시스템이 두 자릿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2000년대로 넘어가게 되면서 1900년과 2000년의 정보가 충돌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컴퓨터로 통제하고 있는 여러 시스템에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비행기는 공중에서 길을 잃고 거리의 신호등 체계는 혼란을 일으킬 것이며 예금되어 있는 돈이나 연금 내역이 증발하고 심지어는 대규모의 방사능이 누출될 수도 있다고. 처음에는 안일하게 여겼던 사람들도 연말이 다가오자 초조해졌다. 휴거설이야 미신에 가까운 허무맹랑한 것이라지만, Y2K는 훨씬 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가. 대혼란을 대비해 식량을 미리 사놓는 사람들도, 은행에 예금했던 돈을 한 번에 인출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새로운 시대의 혼란을 걱정했지만 아이들의 경우는 좀 달랐다. 우리의 현실감각은 바짝 땅에 붙어 저공비행했고 영화에서나 보던 아포칼립스에 대한 환상이 뒤얽혀 있었다. Y2K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역경이었다. 언제나 우리 편이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 같은 것. 불가항력적인 재난 상황을 뚫고 살아남은 지구를 그린 영화, '딥 임팩트(1999)'도 '아마겟돈(1999)'도 있지 않은가. 죽음이라든지 끝, 최후라는 개념은 만화영화 속 서사처럼 딴 세상의 일이었다. 나쁜 것들은 만화 속의 영웅이나 전능해 보이는 어른들이 어김없이 해결해 줄 거란 깊고 단단한 신뢰. 엄마, 아빠가 절대적인 존재였고 그들의 비호 속에서 세상은 아름답다는, 정의로운 것은 어김없이 이긴다는. 그것이 우리가 서있는 기반이었다. 선한 것은 복을 받고 악한 것은 반드시 응징을 받고 마는.  

물론 권선징악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역시나 걱정이 되는 건 있다. 바로 돈. 자본주의로 길러진 아이들은 의례 돈부터 걱정하는 법이니까.

"아빠, 밀레니엄이 오면 은행에 있던 돈이 다 없어진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공부나 해."


드디어 세기의 마지막 날

갖가지 추측과 난장 속에 1999년 12월 31일이 되었다.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다니던 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곤 했다. 평소에 일찍 자라고 잔소리하는 엄마도 늦게 까지 깨어 있는 것을 허락해 준 특별한 날이었다. 어른들의 시간인 자정에 깨어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이 났다. 귀신들이 활동하는 시간, 날짜가 넘어가는 시간, 산타 할아버지가 살금살금 우리에게 선물을 놓고 가는 시간, 신데렐라의 마법이 사라지는 시간. 모든 신비한 일들은 경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1999년 12월 31일은 다른 어느 마지막 날보다 더 특별했다. 

교회에서도 평소보다 큰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초등부에서는 몇 개월에 걸쳐 찬양 무대를 준비했고 청소년부에서는 연극을 했다. 나이대별로 묶인 작은 공동체에서 새해, 새 천년을 맞이하는 감회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었다. 이렇게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이, 세기말에 대한 두려움도 걱정도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라는 지극히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새 천 년을 향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5,4,3,2,1! 드디어 새 천 년이 밝았습니다!

목사님의 우렁찬 함성과 극적인 감사 기도는 우리가 드디어 새로운 세기에 한 발자국을 내디뎠음을 선포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는 사태도, 비행기의 추락도, 누군가가 재입대를 하는 사고도 없는 어제와 다름없는 자정. 천 년이 흐르는 벅찬 순간이 지났는데도 나와 내 주변은 그대로였다. 요술 공주가 나와 이 세상을 달콤한 것으로 바꾸는 일도, 모든 숙제와 시험 없는 유토피아가 도래하는 일도, 천사들과 우리가 함께 내도록 춤추는 일도 없이. 

하여 나는 그날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새 천년이 되어도 여전히 겨울 방학 숙제는 해야 한다는 것, 한참이나 밀려 있는 일기도 결국은 내가 써야 한다는 것, 나는 내가 일구어야 할 삶이 있다는 것. 개인적 차원에서의 삶은 오롯이 내 몫으로만 남겨진다는 것을. 


덧.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던 사건이니, 당시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했었던 것은 틀림없다. 물론 그 와중에 군중의 심리를 이용하여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영리한 기업들이 있었던 건 당연지사(그 덕에 90년대 IMF 여파로 허덕였던 유통업계가 잠시나마 호재를 누리기도 했다). 재난 대비 용품은 불티나게 팔렸고 상품마다 밀레니엄이니 Y2K니 하는 라벨이 붙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Y2K*라는 이름을 가진 3인조 낭성 밴드가 생기는 일도 있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그 밴드는 인기를 얻기도 했다. 
내가 밴드 Y2K에 열광하고 밀레니엄 버그를 단순히 세기말의 스펙터클적 불안함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사이, 일상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이 세계 곳곳에서 있었다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카운트 다운을 하는 그 순간, 우리나라에서도 50만 명의 근로자들이 Y2K의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며 보도했던 다양한 우려들은 단순 괴담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위기가 한낱 해프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범세계적인 프로그래머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하니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 일 없는 날은 재미없고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가열찬 노력의 산실이라는 것. 세기가 바뀌던 그날,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알게 될 많은 것들의 자양분이 심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게 절대적이었던 부모님이 틀릴 수도 있다는, 조금 아픈 진실도 함께였다. 



*오컬트적인 사건 : 95년에 옴진리교의 사린 사건이 있다. 

*Y2K : 1999년 한, 일 합동 밴드로 보컬에 고재근, 세션에 마츠오 유치이와 마츠오 코지, 이렇게 3인으로 이루어져 있는 밴드다. 타이틀 곡 <헤어진 후에>가 유명하고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얻으며 활동했다. 참고로 당시 한일 합작 걸그룹 아이돌은 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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