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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주 Feb 09. 2017

연애하지 않을 자유

자아성찰의 시간


팟캐스트에서 요조와 김관의 "이게 뭐라고"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책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는 데 얼마나 맛있게 설명해주던지 요조나 김관의 입에서 오르내린 작품들은 한 번쯤 모두 읽어 보고 싶어 질 정도다. 


작년 초여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벌써 많은 회차가 쌓여 있었지만 성격상 뭐든 순서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관계로 스크롤을 내려 1화를 클릭했다. 

그 첫 화는 이진송 작가의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진송 작가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쓴 계간지는 접한 적이 있었다. 독립서점에서 종종 눈에 띄던 "계간홀로"라는 잡지였다. 하지만 나는 '연애하지 않을 자유' 혹은 '니 연애 니나 재밌지'라는 카피라이트를 봤을 때, 변명이겠지, 하고 넘겼다. 연애를 하는 무능력에 대한 변명의 기재가 너무 강하게 작용한 나머지 이젠 권리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구나.라고 말이다. 

근데,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인지.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안부차 물었던 

"왜 아무도 안 만나?"

라는 말들이 무의식적으로 '비연애자=열등한 존재'로 취급한다는 말은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남친 어떤 애야,라고 말하며 우월감을 드러내기도 했으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화는 내지 마시길, 왜냐면 이 등식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나의 이런 생각들이 자신을 억압하는 기재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책을 읽다 문득 불안한 것을 외롭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외로운 것일까, 아니면 불안한 것일까. 혼자라도 괜찮은데, 연애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나는 단지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팟캐스트를 들으며 끄적끄적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허울 없이 지내온 선배들이 있는데 그들은 나에게 이상적인(물론 남자들의 시선에서) 여성의 프레임을 심어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한 마디로 남자들은 이런 여자 좋아해, 라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주입을 받았다는 소리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마치 무슨 연애 지침서라도 되는 양 떠받들곤 했었다. 선배들한테 이쁨 받고 싶었으니까. 

오라방들은 개강파티를 하면 늘 이번 신입생의 누구는 기가 세다느니, 너무 밝히게 생겼다느니 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하며 여자 신입생 품평회를 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미 10년도 더 된 일이기도 하고(그때는 사회적 인식이 이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그들도 그 기가 세다느니 뭐니 욕했던 애들과 연애를 하며 눈물 콧물 쏙 뺀 스토리를 내가 여과 없이 봐온 터라 봐주도록 하자. 

아무튼 오라방들에게 '얼마나 예쁜, 그리고 참한' 여자라 사귀느냐는, 그리고 진도는 어느 정도까지 나갔느냐 하는 문제는 그 나이에서는 참 중요한 이슈였던 듯하다.

"야, A여친 X나 예뻐. A능력 장난 아냐. 무슨 능력이 있길래?ㅎㅎㅎ"

근데 문제는 내가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여자 친구, 말도 잘 듣고 착하고 소위 남친 기 살려주는 그런 여자친구. 그래서 더 유심히 그들의 말을 들었고 나도 모르게 남성의 잣대로 나를 재단하고 맞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남자들이 싫어해.

그런 옷은 너무 세서 남자들이 부담스러워해. 

화장은 청순한 듯해야 나긋해 보여서 인기가 많지. 


철저히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 말이다. 이를 나 자신에게 내면화했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억울한 일이다. 그런 얘기들은 고작 이십 대 중반의 남자'애'들이 뭣도 모르고 한 말들이었을 뿐인데. 

그렇게 평가한 내 모습은 참으로 볼품없었다. 키는 작고 가슴은 빈약했고, 눈은 어떻고, 코는 어떻고, 약간 통통하기도 한 것도 같고. 그래도 나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하찮게 여겨졌다. 결핍 투성이의 내 모습은 TV에서 나오는 아이돌..(미안하다, 아이돌과 비교해서)에 비해 너무 초라했다. 


이미 낳아진 것 성형밖에 답이 없네. 

그럼 키는 어떡하고? 

그냥 다시 태어나야겠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과 이야기했지만 속이 쓰릴 때가 많았다. 

이건 막연한 불편함이었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런데 이진송 작가가, 아주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 


물론 나는 이 작가의 모든 글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는다. 여성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본 나머지 왜곡된 남성의 모습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아이돌을 따라다니는 10대 팬들에 대한 팬심을 아이돌이 연애를 하면서 받는 상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연애의 억압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막대하다는 점에 대해서 '아주 아주 섬세하고 똑똑한' 남성 작가가 후속 편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막연한 불편함에 대해 이름을 붙여주고 끌어내 주는 작업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정말 고맙다. 


정말 꼭꼭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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