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유라 에세이

by 유라

이 글은 절대 자랑이 아니다. 사실, 이런 글로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늘 ‘그들이 원하는 답’을 요구받는 느낌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이미 마음속에 ‘정답’을 정해둔 듯했다.

내가 그 정답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혼이 나거나,

“그건 안 돼.” “왜 그렇게 해?” 같은 말로 제지당했다.

그래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늘 싸워야 했다.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정말 내 잘못인 줄 알았다.

“정답이 뭘까?”를 고민하며 부모님께 물었고,

내 생각보다 그들의 생각에 맞는지가 기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그들의 ‘정답’에 맞춰 판단하며 살아갔다.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했다.

내 모든 행동이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억울함이 마음속에 쌓여만 갔다.

그러다 보니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면 내가 변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렇게 뚱뚱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조금 통통할 뿐이었는데,

마치 살아남으려면 뼈마름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엉덩이가 커서 미스코리아는 못 나가겠네.”라며 웃던 말조차

나에게는 체중 감량을 재촉하는 말처럼 들렸다.

지금은 성희롱도 느껴진다.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의 나는 꼭 해야 하는 숙제처럼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아직 키가 자랄 시기였는데, 먹는 걸 줄이다 보니 키가 크지 않았다.

더 크고 싶었는데… 정말 더 크고 싶었는데.


후회했지만 이미 키는 멈춰 있었다.

그리고 ‘키가 작으면 몸무게도 더 적게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체중 감량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몸매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내 모든 게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고,

겨우 중학생 나이에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 끝에는 늘 “그래도 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성인이 될 때까지도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듯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에 가거나 취업을 하기보다는

집에서 만화나 게임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았다.


첫 직장은 스무 살 때였다.

직업 훈련을 받고 옷 공장에 취직했다.

옷 공장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복지는 너무 열악했다.

나름 유명 브랜드의 하청업체였고, 정부 지원금도 사장이 함께 받았는데,

내 4대 보험을 몰래 빼먹으려다 내가 알아차리기도 했다.

결국 지원금 문제로 반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뒀다.


옷을 좋아했고 공예를 좋아했는데, 그 일을 겪으면서

의류 분야에 대한 꿈들이 다 무너졌다.

첫 직장 경험이 너무 안 좋았던 탓에 퇴사 후에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번이나 취업을 준비하다가,

스물일곱 살이 되어서야 다시 학원 상담 + 사무직 일을 구했다.

오랜만의 직장 생활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과거 따돌림의 기억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게 힘들었지만, 상담 업무가 있었고,

또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 고용 계약이 아닌 ‘업무 계약’으로 일했다.


그래도 조금씩 적응하면서,

‘이전의 과거를 후회하듯’

누구의 눈에도 잘못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업무 계약이 잘 맞지 않았고,

수입도 적어서인지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결국 난치병 같은 병에 걸렸다.


병을 치료하려면 면역력 관리가 필요했기에,

체력을 다 소모하는 학원 상담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만뒀다.

퇴사 직전에는 독감에 걸린 몸으로 인수인계까지 마쳤다.


독감이 회복된 후, 이번에는 마케팅 회사에 고용 계약으로 취직했다.

퇴근 후에는 운동까지 하며 몸을 관리했고,

덕분에 면역력 외에는 치료법이 없던 난치병이 점점 나아졌다.

하지만 그 회사도 오래 다니지 못하고, 결국 해고되었다.


그다음에는 임금 체불까지 겪으며 스포츠센터에서 일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누구의 눈에도 잘못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살았다.


아침에는 삶은 달걀로 간단히 식사하고, 헬스장에서 한 시간 운동을 했다.

점심은 식단표에 맞춰 먹었고, 오후에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다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주말엔 공부를 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갓생’의 형태는 다를 수 있다.

내가 생각했고, 내가 살았던 ‘갓생’은 이랬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

‘갓생’을 살면 힘들더라도 뿌듯할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나 허무했고, 가슴에 구멍이라도 난 듯했다.

그날은 인생 자체에 번아웃이 온 것 같았다.

그때는 왜 그런지 아직 이유를 몰랐다.


너무 힘든 마음에, 예전에 알아두었던 24시간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울면서 “너무 공허한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자,

상담사는 정부 지원 사업을 안내해 주었고,

그렇게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상담 때마다 아픈 과거를 꺼내니 더욱 우울해졌다.

그럼에도 눈치가 보여 쉴 수 없었고, 계속 출근했다.

그래서 피곤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업무 중에도 어지럼증이 계속되었고,

전에 저혈압으로 거의 실신할 뻔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 상사의 양해로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그런데 5분도 채 걷지 못해 눈앞이 핑 돌았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어지러움이 계속되었다.

무서워서 가족에게 말했고,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갔다.

실신할 뻔했을 때보다 훨씬 심했고,

검사를 받는 동안 ‘큰일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결국 그날의 증세는 출근길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부터 공황이었다.

그 뒤로도 공황 증세가 반복되어 월차를 내야 했고,

알고 보니 임금도 체불되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퇴사했다.


치료를 하며 패턴을 알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소모가 심하면 어지러움이 찾아왔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상담을 8회 하면서 유튜브로 심리학 영상을 수시로 보니 알게 되었다. 그날 그렇게도 눈물이 나고, 공허하고, 모든 게 싫었던 이유는 단순히 상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갓생’을 내 가치관에 따라 신중히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답게’ 살아온 게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거나 시키는 듯한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물론, 내가 보편적이지 않은 경험을 겪으면서 자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진심으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옛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불안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불안을 버티기 위해 강박이 따라오고

사회가 정한 허상의 ‘정상’과 ‘이상’을 신념처럼 따른다고 했다.


이제 나는 나의 방법을 안다.

인생은 스스로 헤매면서,

수많은 선택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해 나가는 것이라는 걸.


당신은 당신의 방법을 아는가?

지금, 왜 그런 라이프스타일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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