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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Jul 06. 2016

커피숍

2016년 7월 6일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이따금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커피숍에 혼자 있다.

밀린 '일'을 해야지, 왠지 시간이 한창 있을 때는 못한 '생각' 정리해야지, 하다가도 고교 시절 수능 공부하다 나온 의식의 흐름처럼 결국 잡다한 딴짓으로 빠지기 일쑤다.

한 자리에 진득하니 있다보면, 남들의 듣기 싫은 이야기나 소몰이에 열중하는 유행가 따위 듣지 않으려고 이어폰 음량을 최대로 켜두어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강남 미녀'라는 말이 어울리는 두 명이 환기가 잘 안 되는 흡연실에 들어와 담배를 태운다. 멀뚱거리게 벽을 바라보고 있어도 그 대화들이 들린다.

나이 많은 남자들이 여우라니까. 눈치가 빨라. 운동을 요새 하나도 못 했어.

풍채로 보나 옷차림으로 보나, 어디 사업가일 가응성이 농후한 나이 많은 아저씨가 일행이었다. 당당하게 빈 담뱃갑을 꽁초와 담뱃재로 너저분한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불을 붙인다.
존댓말을 쓰는 걸 보니 초면이거나 무언가 심상치 않은 관계다.
그리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어릴 때 오래 들었던 인디 록 그룹의 서정적인 가사가 멜로디만 있는 음악처럼 귀를 타고 귀 바깥으로 그저, 흐른다.

네이버 뉴스를 뒤적이다가, 소설가 김승옥이 그림 전시를 연다는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 이미 절필 선언한 그는 지금 소설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나 문장 구조를 이루는 데도 어렵다고 한다.
많은 글 쓰는 이가 그러하였듯이 나 또한 김승옥의 전집을 읽었다. 범우사가 출간한 주황색 문고판 <무진기행>은 예전처럼 읽지 않아도 언제나 손이 닿는 거리에 둔다.

혜진이가 가족 여행을 다녀와서, 혜린이 생일 겸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오랜 이야기를 듣느라 소주도 한 병 더했다.
여행 이야기가 그저 즐거워 보이고 표면적이었다면, 사실 그 안에 지금 서른 언저리여야 할 법한 고민이 생각보다 더 가득하였다.

가끔 무언가 만드는 것에 관하여 생각한다.
훌륭한 작업.
왜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에 점점 더 멀어지게 될까.
친구들과는 재밌는 일을 하고, 회사와는 돈 버는 일을 하고 싶다고, 역시 서른 언저리였던 수년 전의 내가 말하였고 아마도 이 공간에도 쓴 적이 있을 것이다.
요즘 만나는 소수의 친구는 사실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대화는 생각보다 끊겼고, 언젠가 진심으로 두근거리면서 이야기한 내용도 퍽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삶'을 '사는' 그 '시점'에 생각하지 못하였으나,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을 돌이키면 어떠한 선택들이 이뤄낸 갈림길 같은 것이 보이곤 한다.
그것들이 모여 사람이 되었다.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고민하고, 평범해지고 싶으면서도 또, 결국 다르고 싶은 복잡한 감정들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

장맛비는 잠시 소강상태에 도달했다.

전국에 수백 개는 있는 체인점이라 오는 사람들도 별반 부담 없는 흔해 빠진 커피숍에 오가는 여러 사람을 보다가 훌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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