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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Feb 27. 2017

'처음'이 있는 겨울

2016년 10월 30일

가끔 약속 시각보다 훨씬 일찍 나와 걷고 싶을 때가 있다. 평소답지 않게 일찍 잠들어서 그만큼 일찍 일어난 날이다. 조금 느릿느릿 샤워하고 짐을 챙기는 사이 지난밤 깜빡한 아이폰이며 애플워치를 충전한다. 하는 줄도 몰랐던 광주 비엔날레를 보러 가기로 한 오늘 그렇게 집을 나섰다. 미우치아 프라다 Miuccia Prada가 참여한 이래 첫 방문이니 12년은 되었다. 대문을 여는 순간, 마치 여명처럼 보이는 늦은 새벽의 뜨는 해를 보았다. 짙은 노랑과 흠뻑 젖은 듯한 파랑이 다른 모든 것을 까만 그림자 안에 빨아들여 서둘러 나서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아침 기온이 영하 1도에 도달할 정도로 진짜 '겨울' 초입에 들어섰다고 해도 부지런히 걷다 보면 이마와 목 등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남들보다 배는 땀이 많은 체질이라 편한 적이 없었는데, 손과 얼굴은 분명히 찬데 여전히 땀이 나니 신기하다. 커피숍도 문 열지 않은 시간 담배를 사며 편의점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켠다. 파리에 다녀온 이후 꽤 오래 감기가 낫지 않아 칼칼한 목에 조금이나마 위안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일기에나 기록할 만한 사소한 몇 가지 '처음'이 있는 겨울이다. 뚝 떨어진 기온에 올가을 들어 처음 얇은 캐시미어 코트를 입었고, 앞서 말한 대로 열이 많은 내가 처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뒤숭숭한 세월, 그래도 여전히 흐르는 일요일 아침 길거리는 아직 고요하고 다니는 차도 사람도 손에 꼽힐 만큼 적다. 어제 발견한 음악가의 노래를 듣고, 최근 가장 만족한 쇼핑이었던 회색 면 후드 파카를 입고, 선물할 애플 워치 시리즈 2 Apple Watch Series 2를 배낭에 넣고 걷는다.

인터뷰, 원고 몇 개, 이제 사람들에게 제법 말하고 다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야 할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 준비에 어느 아이돌 뮤직비디오 작업까지 11월 초에 퍽 할 일이 많다. '영감을 얻겠다'는 핑계로 오늘과 내일은 서울을 벗어나 예술 작품들을 듬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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