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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Mar 10. 2020

마음을 끊임없이 채워야 한다는 것에 반기를 든다

2020년 2월 15일

마음을 끊임없이 채워야 한다는 것에 반기를 든다. 지독한 사물들, 지치지 않고 보이는 족족 채워지는 시각 공해들. 지금보다 어렸을 , 지금  나이 정도 되었을 선배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을 , 그들과 친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딱히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그때는 그때의 삶을 놀이공원에 처음  아이의 롤러코스터처럼 타고 있었다. 사람들의 안부 중에는 낯선 얼굴만큼이나 기억하지 못한 인사 또한 많았다.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를 보다가 끄고, 위스키를  잔째 따르고는 마저 김승옥 소설을 읽는다. 70년대 같은 노래가 나오는구나, 싶더니 1977년의 음반이 아이패드 iPad  귀퉁이 스피커에서 방으로 번져간다.  카메라, 라이카 Leica Q2 아직 적응하지 못하였다. 어쩐지 카메라를 들고 걷는 시간이 밤을 제외하면 도무지 나지 않았다. 어제  대학로 병원을 나서면서 오후 가장 빛이 좋은 시간의 종로를 오랜만에 걸어볼까 하였으나, 병원이라는 곳은 누구의 말처럼 사람의 진을  뺀다. 코로나19 여파로 그나마 방문객이 줄었을 텐데도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병원의 엘리베이터는, 외래 병동의 진료실 앞은, 어느 지점보다 장사가 잘될  같은 건물 1층의 최신식 편의점은 오가는 마스크  익명의 인구들로 가득 찼다. 밤의 병원을 직접 겪은 마지막은 중학교 2학년 봄방학 무렵이었다. 개학하고 일주일 정도 빠지며 입원하였을 , 간이 되어 있지 않은 병원 밥의 무자비함과 파파이스 치킨의 위대함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무언가 만든다고 소비를 한다. 잠깐의 충족을 위하여, 안목의 자아 발전적인 과시를 위하여, 모두에게 동일하게 흐르는 시간과 공간의 일부를 사적으로 기록하기 위하여 우리는 소비를 한다. 며칠 계속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로 평소 그저 넘기고 말았을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조각내어 영상으로, 가끔 사진으로 기록한다.  짧은 단면이 짧은 단편이 되었을  편집이라기도 머쓱할 정도로 이어 붙이고 공유한다. 그것을 바로 어제부터 실천하였다. 10초씩  자른 서울 곳곳 풍경은 가끔  자체로 이야기하였다. 소비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가끔 궁리하고, 습관적으로 기록으로 남겨 둔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혀를 끌끌 차다가도 종소리를 듣고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이어간다.


지난해 말에  찍어둔 집이 하나 있다. 복층 구조이고, 신축 건물이다. 남들이 열과 성을 다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마는 아파트는 아니지만 마음에는  들었다.   안에  집을  것으로 만드는 것이 소박하달까, 혹은 장대한 인생의 목표  하나가 되었다. 그것을 위하여 직선으로 달려간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집의 테라스에서 하늘 보는 상상은 한두 번쯤 하였다. 그리고   책상 의자에 앉아 있는  카메라를 보았다.  카메라를 사기 훨씬 전에 아주  마음을 먹고  카메라와 렌즈 또한 생각해보았다.


소비는 규모를 확장하여 이어진다. 초등학교 2학년의 나는 목동 동네 골목 문방구에서  500원짜리 닌자 거북이 합성수지 인형에 행복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소비를 취향이라고, 투자라고, 삶의 질을 드러내는 수준이라고 부른다. 난색을 보이다가도 속물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그런 것이 지겹다. 그래도 이곳에, 서울에, 도시에, 낮과 밤이 시끄럽고 모두가 한가득 미래를 생각하는 땅에 발을 두드린다. 요즘은 종종 바쁘다는 것을 생각한다.   예약했던 치앙마이  비행기표는 3 원의 취소 수수료와 함께 날아갔다(오는 봄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무리였다).


기회비용을 떠올린다. 봄이  여름일, 다가오지 않은 계절의 변화를 짐작한다. 일요일에 내린다는 눈을 어린애처럼 기대한다. 새벽은 그렇게 잘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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