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2025년 9월 3일

by Hong Sukwoo

일요일은 오전부터 부산스러웠고, 오후 두 시쯤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했다. 종합병원은 매일 사람이 북적이는데, 입원 환자나 그들의 보호자들만 조금 있던 일요일은 커다란 병원 대지와 건물 곳곳이 한산할 정도로 비었다. 본관 로비 옆은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은 면회 공간이다. 통유리 사이 겹겹이 빛과 그림자가 앞뒤로 춤을 춘다. 작고한 한국 추상화 거장의 대형 작품 몇 점이 가설 전시 공간을 채웠다.


병원은 시원했다. 병실은 더웠다. 옆자리 환자가 너무 춥다고 에어컨을 꺼달라고 했고, 창문까지 열어두었기 때문이었다. 뙤약볕 열기를 품은 바람이 실내를 달구고 나니 중앙 공조 시스템의 작은 관에서 내리는 바람은 영 힘을 쓰지 못했다. 간호사님들이 빠르고 친절하게 처리해 주셨으나 결국 늦은 저녁에는 입원실을 바꿨다. 옆자리 환자는 불평불만이 많아 보였다. TV에 나온 집권 세력의 정치 뉴스를 보며 고함을 치는 시골 어르신이었다. 그는 원체 모가 난 사람일 수도 있다. 다만 그의 병이 마음을 더 날카롭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특히 병원은 그런 곳이다.

원래 2박 3일이던 입원 기간은 마지막 PET-CT 검사가 하루 밀리면서 3박 4일이 되었다. 여러 길고 짧은 금식이 있었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 필요는 했으나, 아버지의 체력이 떨어지는 게 눈에 선했다. 조직 검사와 PET-CT 검사 사이, 음식 섭취를 매우 절제해야 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준 미음 같은 죽 정도와 물을 빼면 먹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내려가는 체중이 더 빠졌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


기존에 받은 약제 역시 입원 기간에는 병원의 통제를 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본격적인 치료의 사전 준비 단계라서, 통증을 다스리고 체력을 보완하는 것이 앞으로 있을 항암 치료에 대비하는 중요한 일이다. 패치 형태의 진통제를 맞고, 영양제 수액도 맞고, 온갖 검사를 하고…. 짧다면 짧을 며칠이 아버지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길었을 것이다.


사흘 밤을 가득 채운 수요일 정오, 부모님은 퇴원 수속을 마쳤다 (250만 원 넘게 든 병원비와 함께). 나는 구름 한 점 없는 안국역과 광화문을 지나 다시 병원으로 간다. 현재 아버지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는 다음 주 화요일에 알 수 있다. 그날도 검사는 한가득이다.


고작 며칠 입원임에도 엄마, 아빠, 내가 각자 준비한 이런저런 서류 뭉치와 생필품 같은 걸 정리하던 시각, 나는 1년 반에서 2년 전쯤 사두고 거의 쓰지 않은 크고 도톰한 노트를 펼쳐보았다. 딱 하나 남긴 글은 ‘이 노트에는 즐거운 것을 써보자’라는 다짐의 짧은 일기였다. 작은 크로스 백에 겨우 들어가는 공책을 굳이 병원에 가지고 갔다. 결국 그 공책을 펼쳐 다시 무언가 쓰는 일은, 일요일의 조용한 병원에서는 물론 적어도 며칠 사이에는 없었다 (대신 책상 옆 의자에 고이).


서서히 일을 한다. 아니, 왜, 라는 생각이 들 만큼 평소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난다. 녹색 가로수들은 기분 탓인지 연한 노란빛을 머금고, 물건을 새로 산다는 것의 감흥이 정말로 많이 떨어졌구나, 느낀다.


어떤 작업, 어떤 즐거움 같은 것은 여전히 중요하나 요즘은 말 그대로 ’행복‘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특히 아빠에게도 일종의 전염처럼 번졌으면 한다. 어쩌면 우리는 쉽고 평탄한 길을 걷고 있지 않겠지만, 그 사이 아버지가 자신이 하고 싶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고, 기록으로 남겨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Seoul, S. Korea

Sun, August 31, 2025

입원












Photographed by Leica 라이카 M11-P + Voigtlander (Voigtländer) 보이그랜더 Color-Skopar 50mm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