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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Aug 28. 2015

휴가 이후

조금 더 밖으로 다니자고 생각했다.

6일 정도 발리에 다녀왔다. 휴양지는 작년 초, 멕시코 칸쿤 이후 처음이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좋았다. 일요일에 장염에 걸려서 아직까지 설사와 복통으로 일을 하나도 못하고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Batu Bolong Beach, Canggu, Bali. Mon, August 24, 2015.

지금 걸린 장염은 내 인생 최악의 장염이 될 것 같다. 소화가 전혀 되지 않는다. 설사도 멎지 않아서 이 시간까지 못 자고 있다.

서울에 도착한 날은 태풍 영향권을 막 벗어나려는 참이었다. 비행기 창문을 빗방울이 세게 때렸다. 몸 상태만 정상이었다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 서울 날씨에 왠지 모를 기대감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드디어 진입한다는 쾌감 - 에 발걸음이 가벼웠을 테다. 아쉽다, 그 점이.

몸속 수분을 쭉쭉 빼낸 몸으로 담배 한 개비 태우려고 새벽, 동네 놀이터에 나오니 매미 소리는 진작에 사라졌다. 대신 귀뚜라미들이 몇 주 전보다 더 우렁차게 우는 기분이다. 곧 없어지는, 오랜 친구가 8년간 만든 잡지의 코멘트를 어제저녁 겨우 넘겼다. 질문 중 하나는 '지난 8년의 성취'였다. 자못 거창해서 무엇을 이루었다고 쓰지 않고 항상 궁금하였고, 또 여전히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를 조금 추상적으로 써서 에디터에게 보냈다. 석종이와 민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폐간' 소식을 처음 들은 날, 8월 초순 어느 대학로 치킨집에서 친구의 다음 계획을 듣고 있자니 참 멋있는 남자로구나 싶었다. '사람'이 중요하단 걸 아는 녀석이다.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오전까지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오후에는 꼭 병원에 다시 가려 한다. 집과 가까운 동네 내과는 믿지 못하겠으니 다른 병원에 가자.

9월이 곧 온다. 바야흐로 '패션'의 계절이다. 두툼하고, 겹쳐 입을 수 있고, 온갖 새로운 컬렉션이 새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그런 시기이다. 예전에 미국 <보그 VOGUE>를 다룬 다큐멘터리 이름이 <셉템버 이슈 September Issue>였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번 여행은 그저 일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떠난 -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를 - 정직한 여름 휴가였다. 휴양지니까, 그곳에 온 사람 대부분이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퍽 느낀 점이 많았다. 우리가 이 작은 사회 안에서 누구와 비교하여 잘나 보이려고 외형적으로 발버둥 치는 많은 것에 회의감 비슷하게 들었다.

좋은 창작을 느끼고, 소개하고, 혹은 자신이 창작의 주체가 되어 무언가 한다. 그러면서 돈도 벌고, 삶도 즐거워진다면 금상첨화겠지. 여행, 영화, 모두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로 떠나고, 영화관 좌석에 앉는 게 좀처럼 마음같이 되지 못한 수년 간이었다. 조금 더 밖으로 다니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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