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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Sep 03. 2015

크래커, 마지막 촬영

정말로 오랜만에 거리 패션 사진을 '찍혔다'.

<크래커 유어 워드로브 Cracker Your Wardrobe>

2007. 09 - 2015. 09.
8th Anniversary and The Last Issue.

우리나라 최초의 '스트리트 패션 사진 street fashion snap' 전문 잡지였고, 2015년 9월로 8주년을 맞이한다. 아쉽지만, 이번 8주년 기념호는 마지막 호가 되었다.

8월 초순, 나와 피프티서울 FIFTY SEOUL 벼룩시장을 함께 여는 석종이와 민구를 만났다. 석종이는 <크래커 유어 워드로브(이하 크래커)> 편집장이자 창립 구성원 세 명 중 한 명이다. 피프티서울 이야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얘기처럼 말했다. 이번 호로 <크래커>는 접는다고, 자기 생각에 종이 잡지의 미래가 2년 후 더는 없어 보인다고. 그러나 나빠진 환경에서 어쩔 수 없는 퇴장은 아니다.

실제로 <크래커>를 만드는 회사의 다른 한 축인 광고 에이전시, '크래커 랩 Cracker Lab'은 이 불황에도 퍽 선전한다고 했다. <크래커>를 접기로 계획하고 약 1년 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는 안경과 선글라스 브랜드를 선보이는 일이라고 했다. '출판'을 그만두고서 '제조업'이라니, 좀 놀라운 방향 전환이었지만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브랜드 이름은 더블 러버스 DOUBLE LOVERS이고 9월부터 크래커숍과 알로 ALO 몇곳에서 판매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편집부 인원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 석종이는 지금 함께하는 친구들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고 했다. 오래 일한 에디터들은 오히려 시원하게 잘됐다는 기분이라 했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에디터들이 못내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집장이 이끄는 팀이니까, 그들은 남을 것이다. 이 부분이 석종이가 특히 훌륭한 점이다. 이제 마지막 <크래커> 매거진을 마무리하면,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이번 호에는 정말로 오랜만에 <크래커> 거리 사진을 '찍혔다'. 마지막 호는 거리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까지 <크래커>에 나왔거나 관계가 있던 사람들로만 한 권을 채운다고 했다. 그래서 나와 민구를 함께 담았다. 셋의 접점은 아무래도 피프티서울이니까 오래도록 장소를 제공해준 웨이즈오브씽 WAYS OF SEEING에서 찍으려다가, 2011년 겨울 '피프티서울' 벼룩시장을 처음 구상한 길음역 앞 치킨집으로 정했다.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어색한 남자 둘이었지만 어떻게든 했다. <크래커> 사진가와 에디터가 우리를 찍을 때, 나도 그들을 찍었다. 이 사진 한 장을 남겼다.

Last of shooting for The CRACKER YOUR WARDROBE Magazine, Tue, August 18, 2015.

더불어 마지막 호에는 공통 질문과 소개가 들어가는데, 아래처럼 보냈다. 좀 길게 쓴 원문을 올린다. 8년이라.괜찮은 시간이었다.

프로필
홍석우 Hong Sukwoo, 33세, 패션 저널리스트, <스펙트럼 spectrum> 매거진•<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 편집장

본인 소개
홍석우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서울을 중심으로 동시대 창작자들을 다루는 <스펙트럼 spectrum> 매거진 편집장이다. 2015년 봄부터 소셜 미디어 패션 잡지,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을 선보이고 있다.
thenavymagazine.com / instagram@TheNAVYMagazine / facebook.com/TheNAVYMagazine

크래커와의 인연
<크래커>와의 인연은 장석종 편집장과의 인연이다. 지금은 없어진 편집매장 겸 복합문화공간 '데일리 프로젝트 Daily Projects' 바이어로 일하던 2007년 가을, 장석종 편집장이 곧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중심으로 한 잡지를 만든다며 비치해도 되는지 물으러 왔다.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고, 무척 바쁜 날이었다는 정도가 기억난다. 이후 장석종 편집장과는 <크래커>는 물론 그 외의 것들 - 대표적으로는 '기부하는 벼룩시장'인 피프티서울 FIFTY SEOUL - 로 인연이 이어졌다. 이번에 함께 사진 찍은 (강)민구와도 비슷한 시기, 취향이 겹치는 친구들 탓에 알게 되었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인연이란 존재하는구나 싶다.

공통 질문: ‘당신이 8년 동안 이룬 것’

이십 대 때, 내가 한 여러 작업 중 중심에 있다고 정리한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한 방향의 유행을 좇는 기성과 주류에 맞서는 '다양성', 다른 하나는 서울이라는 지역에 몰두하는 '지역성'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하나는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가는 것, 즉 D.I.Y. Do It Yourself였다. 패션 바이어, 강사,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아이돌 그룹 스타일리스트, '매체'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잡지의 편집장을 비롯하여 많은 직업적 역할 role이 지난 8년 나를 거쳤다.

이제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 종종 오히려 스물셋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십 대 때 여러 작업을 해내며 '지겹다'거나 슬럼프 비스름한 것에 빠졌던 마음이 여전히 없지 않지만, 되려 요즘은 그만큼 나이 먹고서 새로 변한 환경들과 아직도 모르는 땅 어딘가를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퍽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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