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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Sep 07. 2015

환절기

온도계는 17도를 가리켰다.

제법 일교차 있는 날씨가 되었다. 금요일 저녁, 어느 촬영 약속으로 스튜디오에 가면서 - 가끔 누가 나를 찍을 때 여전히 어색하다 - 챙긴 가을옷 몇 벌이 아직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이틀 만에 바뀌었다.

일요일 저녁, 아무래도 주말 내린 비의 영향이겠지만, 이틀 전 아직은 '무리'로 생각한 사카이 Sacai의 얇고 바스락거리는 합성 섬유 소재 MA-1 재킷이 무겁지도, 덥지도 않았다. 날씨와 자연이란 항상 신기하고도 경이롭다.

계절 변화를 또렷이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일상의 변곡점은 커피 온도이다.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애호가 수준은 아니고 몸에 열도 많은 데다 더운 날, 일을 마치고 들이켜는 맥주 한잔의 목 넘김만큼 생동감 넘치는 얼음 가득한 차가운 커피를 편애한다. 되도록 가을과 겨울 문턱에도 차가운 커피를 선호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 체육관에 나오면서 카디건을 걸쳤음에도 제법 쌀쌀했다. 애플워치 Apple Watch 온도계는 17도를 가리켰다.

여름 내내 즐겨 쓴 투명한 원통형 물병에 커피 가루를 담고, 정수기로 뜨거운 물을 반 정도 내렸다. 병을 쥐면 미지근한 기운이 손으로 전해진다. 올해 달리면서 입기 시작한, 그리고 발리 Bali 휴가 전 급히 사두고 여행 내내 잘 입고 서울에서도 여전히 애용하는 달리기용 반바지가 이제는 조금 선선해졌다. 운동할 때 입는 반소매 티셔츠 위에 푸른색 나이키 Nike 바람막이를 입었다. 덥지 않고 딱 알맞다.

Nike Windbreaker, Mon, September 07, 2015.

9월의 바쁜 일정을 마치면 다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가을이 스리슬쩍 다가와 있을 테고 생일도 금세 온다.

토요일, 오전부터 사람들이 득실댄 에크루 ecru 할인 이벤트 매장에서 엔할리우드 N.Hoolywood 검정 수트 재킷과 유니폼 익스페리먼트 Uniform Experiment의 남색 블레이저를 샀다. 검정 재킷은 좀 크고 길었지만 안감을 투명하게 만들고 각 부위 이름을 도장으로 찍어낸 활자들이 몹시 매력적이라 사지 않을 재간이 없었고, 남색 블레이저는 몸에 꼭 맞고 한눈에 봐도 잘 만든 옷이었다.

새 옷은 종종 새로 오늘 계절의 사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환절기여서 낮 기온이 10도 넘게 오르더라도, 타는 듯한 여름 햇볕은 한풀 꺾인 지 오래되었다. 계절이 바뀌는 경계, 그중에서도 여름이 가을로 변하는 시기는 대체로 여러 시름을 잊게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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