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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Jul 08. 2015

물건을 산다

2015년 7월 6일

무언가 사고 싶은데, 말 그대로 시간이 없어 쇼핑하지 못했다. 내게 쇼핑은 고해상도 사진을 오므렸다 폈다 다시 손가락으로 가상의 단추를 누르는 것이 아니다. 으리으리한 외국 편집매장들의 온라인 웹사이트가 국내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파격가를 제시해도, 그 옷 한 벌에 쉽게 손이 가지는 않는다.

'물건을 산다'는 것은 결국 몸을 사용하는 경험이어야 한다. 발 닿는 곳에 직접 가서, 무언가 우연히 발견하거나 생각해둔 것을 다시 꼼꼼히 보며 어느 정도 고민하고, 점원과 대화하고, 계산과 포장에 걸리는 시간과 가끔 발생하는 잡담에 '물건'을 어떻게 사용할지 상상하는 과정까지 오롯이 포함한다.

어느 정도 쓸데없는 소비도 가끔 괜찮다. 이를테면, 조너선 앤더슨 Jonathan Anderson의 '기념비적인' 첫 로에베 LOEWE 컬렉션인 2015년도 봄/여름 시즌 남색 '꼬인 가죽' 열쇠고리라든지, 좀 무리하면 여름에도 맬 수 있을 에르메스 Hermès의 작은 면 소재 스카프 같은 것들. 아니면 멋지고 단단하게 만든 여름용 캔버스 천 가방이나 가슴팍 주머니만 달랑 하나 달린 빳빳하고 두꺼운 면 티셔츠도 좋겠다.

여름이니까,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디자인의 선글라스도 괜찮다. 투명한 다리에 밝은 미러 렌즈 디자인에 끌린다. 사실 '애플워치 Apple Watch'는 사려고 했는데, 여러 매장에 전화했지만 기약이 없어 일단 포기했다. 발매 첫날 분더샵 BOONTHESHOP을 조금 일찍 갔어야 했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사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어서 오래 떨어져 있으면 다시 회복하기 쉽지 않다. '먹는 것보다는 (주로 옷과 장신구를) 사는 게 남는 것'으로 생각하던 스물다섯의 나도 있었다.

주위 많은 이가 여전히 소비와 경향을 이야기하는데, 내 사적인 소비의 즐거움은 대체 무엇이 그리 빨아들였나. 여전히 요리조리 하나씩 건져낼 때 기쁨은 크더라도 어느 정도 식은 게 사실이다. 더는 무언가 사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이야기는 뻔질나게 했다. 가까이서 자기 브랜드를 만드는 이들에 일부 미안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좀 더 괜찮은 가게들을 가고 싶다. 무심결에 들어갔다가 휘몰아치듯이 끌린 기억이 가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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