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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Oct 25. 2015

run and clothes

사실 아무 가치도 없을 생각을 한다

아침에는 너무 화가 나서, 뛰었다. 뛰다 보면 열이 나고 해가 나긴 해도 쌀쌀한 아침 기온은 바람막이 하나로는 어림없다. 운동용 반바지에 올해 처음 신어보는 레깅스(왜 달리는 남자들이 레깅스를 신나 궁금했는데, 방한 효과에 다리를 조여주니 부상 방지 효과도 조금 있는 듯하다), 바람막이 위에 입은 스웨트셔츠와 뜨개 모자까지 중무장했다. 뛰다 걷다 한성대 입구 개천까지 가니 물론 후회했지마는. 너무 두껍게 입었어.

뛰면서 역시 열이 받아서 3개월 체험 기간이 끝난 애플 뮤직 Apple Music을 결제했다. 매달 1만 원 넘는 돈이 해지하지 않는 한 나갈 예정이다. 네이버 뮤직을 어서 해지해야 한다. 19km를 달리다 걷다 하며 집앞에 오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해는 이미 하늘 한가운데 도달했다. 아무리 좋게 봐도 11월을 눈앞에 둔 날씨는 아니다. 그만큼 가을이 길어졌으니 좋아해야 할까 싶지만, 어째 근래 낮을 내가 알던 가을로 부르긴 또 애매하다.

유투 U2 노래를 들었기 때문에, 애플뮤직을 결제했다고 혼자 생각했다. U2는 내가 록 음악을 좋아하기 전에 이미 슈퍼스타였다. 그러나 보노 Bono는 왠지 끌리지 않았고. 너무 착한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간에 모르는 노래를, 음반을, 숨을 헐떡이고 땀을 흘리면서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영어 가사와 멜로디를 원했다. 들어보니, 항상 이렇게 좋은 음반을 발견하곤 하는데, 좋았다. 모르긴 해도 이 음반의 판매량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누가 들어도 좋을 듯한 달착지근한 멜로디가 적당히 강한 연주와 섞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적당히 명곡을 모은 베스트 음반 비스름한 걸 들었다. 집을 나서며 들은 음반보다는 좀 더 풋풋한 시절의 연주와 보노의 목소리가 있었다.

혼자 노래라도 들으며 어딘가 가고 있을 때 종종 어찌 되어도 좋고 사실 아무 가치도 없을 생각을 한다. 가령, 부산하게 옷장을 뒤지다 2010년인가 사고는 그때 이후 거의 입지 않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Maison Martin Margiela의 M-65 회색 재킷을 꺼내 입었다. 기억에는 이런 날씨에 좀 두툼한 편이었지만 오래된 기억의 망각 혹은 착각이었다. 안감은 따뜻한 면으로 되어 있었지만 얇았다. 맞아. 어느 별로 재미없었던 음악 페스티벌을 보러 갔을 때 이 옷을 입었고, 잡지 <블링 Bling>에 다니던 형이 거리 패션 사진을 찍었고, 나도 거기서 만난 여러 사람을 '당신의 소년기, yourboyhood.com'에 올릴 생각으로 찍었으나 아주 늦게 올렸더랬다. 모자 만드는 디자이너분을 우연히 만나 돗자리에 앉아서 그분이 보고 있던 일본 패션 학교 '문화복장학원'에서 발행하는 패션 사전을 보고, 이런 정직하게 두꺼운 패션 사전을 한국어로 만들면 좋겠다고도 생각한 날이었다. 내게 이 옷은, 아무래도 오랜만에 꺼내입은 데다가 이후에도 별로 입지 않아서인지 그날의 기억이 되었다.

연상하여 또 하나 생각했다. 1년 전의 '나'는 그때도 무언가 '옷'과 '장신구'를 사고 싶어 했고, 쇼핑과 패션에 흥미가 줄었다고 해도 몇 가지는 샀다. 이내 못 산 낙타색 코트 같은 걸 입지 못하는 계절이 가고, 시간은 지났고, 다시 그러한 울 코트를 눈여겨보는 계절이 왔다. 패션에는 미안하지만, 생각하면 사실 옷을 더는 사지 않아도 이미 '나'의 패션이라든지 취향은 완성되어 있다. 계속 무언가 사게 하는 원동력은 그래도 일부 영향받는 유행이자 경향이고 일시적 충동이자 무의식적으로 따르게 되는, 스스로 멋지다고 규정한 것들이 각자 생존 도식을 위하여 지속하는 업데이트였다. 옷뿐만 아니다. 여전히 좋은 소비로 정당화하며 책을 사지만, 사실 아직 마치지 못한 책도 집에 한가득하다.

달리기에서 시작하여 소비의 일면으로 끝난 글인데 이런 생각을, 내가 아는 나로 계속 있는 한 쓸데없다고 속으로 손사래 치면서도 계속할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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