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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현지 Mar 22. 2020

집착의 묘미

아이유에게 전하는 사과문

영 앤 리치 슈퍼스타 아이유. 수많은 메가 히트 앨범을 발매했고, 꾸준한 기부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 미치고 있는 국민 여동생.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그녀가 싫었다. 남자친구가 아이유의 광팬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사랑에 눈이 멀면 상대방의 애정은 오롯이 나만 누려야 할 대상이 된다. 타인과 단 1g도 공유하고 싶지 않기에, 애정전선이 매우 맑음에 수렴할수록 누군가는 더욱 거세게 미움받는 존재가 된다.

 '그때는 그럴 수 있지.' 애써 이해하는 척 하지만, 인정한다. 사랑은 기막히게 유치하다.


그런 그녀가 꽤 괜찮은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있다. 한 때 죽고 못살았던 남자친구가 '자니?'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구남친이 되서가 아니라(물론 완전 아니라고 할 순 없다) 우연히 보게 된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효리네민박' 8화에 아이유와 이효리가 차 안에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제주도의 평온한 분위기, 흘러나오는 음악이 모여 어느 하나 덜 수 없는 명장면으로 자리한다.


"네가 집착하고 있는 게 뭐야? 가족? 인기?"
"저는 평정심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제가 들떴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안 좋아지거든요. 통제력을 잃었다는 생각. 저는 감정 절제를 놓고 싶긴 해요. 저는 이제 많이 웃고 많이 울고 싶어요."

거대한 빛에 둘러 쌓여있는 연예인 아이유보다, 그 반대편 어두운 그림자를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인간 이지은으로 비치던 순간. 문득 그녀를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참, 저 아이 이제 고작 스물다섯이지.


처음에는 어린 톱스타의 고충이 인간미 정도로 느껴졌으나, 곱씹을수록 거나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풀이네' 하고 무심코 씹었다가 입안 가득 번져오는 괴이한 맛에 퉤퉤 뱉게 되는 고수 같은 것. 쉬이 가시지 않는 강렬함.


나는 무엇에 집착하고 있을까? 한 번도 스스로에게 자문해본 적 없는 범주의 이야기였다. 현상은 한 편의 조각일 뿐 이를 유형화해본 적이 없다.

그녀는 본인을 잘 안다. 한 톨만큼의 애정도 뺏기기 싫어 누군가를 미워하는 나보다 훨씬 큰 존재임이 분명하다. 반면, 나는 앞으로 그녀를 미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 정도만 안다.


매년 반기마다 한 번씩 진행되는 회사 업무 역량 평가에서 이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현지님, 업무 우선순위를 배정해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은 조금 내려두면 좋겠어요. 모든 것을 다 잘할 필요는 없어요. 인생이 긴데 지칠까 봐 염려됩니다."

작은 것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못한다는 피드백이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사람, 실수라도 한번 하면 걷잡을 수 없게 무너지는 사람.


무엇이든 잘 해내는 것에 집착했지만, 세상에 혼자 만 잘한다고 모든 것이 잘되리란 보장은 없다. 아이유를 좋아하던 전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그러했다.

연애도 가장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기념일이면 남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멋진 이벤트와 선물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고, 연애의 상대가 남에게 밑 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밸런타인데이 때는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다크커버춰로 초콜릿 수 천 개를 만든 전적도 있으니 평균 이상(혹은 그냥 이상함)은 분명하다.


완벽주의 기질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본인이 못하거나 못할 것 같으면 회피 성향으로 발현되곤 한다. 나는 내 마음이 힘들어질 것 같으면 늘 도망쳐서 상대방을 힘들게 했다. 일도 연애도, 아니 그 어느 것도 지나친 몰입보다 적당한 관망이 더욱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지난 연애는 해피엔딩이었을까.


항상 최고가 되고 싶어
그래서 조급했고 늘 초조했어
남들과 비교는 일상이 돼버렸고
무기였던 내 욕심은 되려
날 옥죄고 또 목줄이 됐어


내 집착으로 고통받은 지난날의 모두에게 사과한다. 연애도 전교 1등처럼 하게 만든 전 연인과,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미움받던 아이유에게.


그런데 말야 돌이켜보니 사실은 말야 나
최고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위로와 감동이 되고 싶었었던 나


무엇보다 늘 마음이 닳아 세상을 버겁게 살아가던 나에게 미안하다. 치열했기에 즐길 여유가 없었고, 초조했기에 모진 가시밭 길만 걸어야 했다. 가엾던 과거의 나와 이별하는 동시에 우리는 화해한다.


집착은 이 것이 집착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게 만드는 녀석이다. 멀고도 가깝고, 가깝고도 먼 그런 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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