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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an Apr 10. 2023

강된장 비빔밥과 레시피, 쉬운 비건 한 끼

떠나간 당신의 입맛을 되돌릴 비빔밥



김가루를 넣어주면 더 맛있는 비빔밥이 만들어진다.



엄마는 강된장을 자주 만들어줬지만, 강된장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가끔 "빠글이"라는 말을 쓰긴 했다. 그런 식으로 가끔, 엄마의 요리에는 명확한 이름이 없었다. 

나는 가끔 빠글이라고 불리는 그 요리를 좋아했다. 갖은 야채와 다짐육에 두부까지 들어간 그 요리를 

김에 밥을 조금 올린 뒤, 또 그 위에 야무지게 두르고, 

한 입 크기로 말아서 입에 넣으면 미각적으로 빈틈이 없는 맛이 입을 가득 채웠다. 


물론 지금 내 강된장엔 고기가 없다. 하지만 손맛은 어느 정도 대물림되는 게 확실한 것 같다. 

사진에 있는 강된장이 생전 처음 만들어본 강된장이었는데, 

첫 끼로 강된장 비빔밥을 해먹고도 조금 남은 게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 정도로 맛있었다. 정말 기뻐서, 지치고 우울한 일이 많은 요즘이지만 하루를 씩씩하게 살아낼 정도였다. 


빠글빠글이란 말은 엄연히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말로 

바글바글보다 "큰 말"이라고 한다. 더군다나 그 의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적은 양의 액체가 자꾸 넓게 퍼지며 끓거나 솟아오르는 소리또는  모양"을 가리킨다고 하니 

엄마가 강된장을 가끔 빠글이라고 부른 게 아주 잘못된 표현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때로는 이름이 없기도 했지만 엄마가 만드는 요리들은 맛있었다. 

하루는 엄마가 된장을 넣은 어떤 국을 만들어줬다.

엄마는 된장국이라고도 안 하고 그냥 국이라고만 했다. 

사실 된장국보다 강한 느낌이었고 그렇다고 찌개도 아니었다.

상관 없었다. 너무 맛있었기에.

4학년이었던 나는 밥을 이미 두 공기를 먹고도 한 공기를 더 먹으려고 눈치를 봤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했던 과자나 간식보다 엄마가 만든 음식이 더 좋았다.


이름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름이 항상 전부는 아니다. 



직접 만든 고사리나물, 무생채, 그리고 엄마의 더덕무침을 이가 나갔지만 여전히 좋아하는 그릇 위에 담았다. 쓰는데 지장이 없으니 버리기 싫었다. 



그땐 몰랐지만, 정확한 이름이 없는 요리들이라니 좀 이상하긴 하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정확한 이름이나 표준화된 이름이 항상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엄마는 작고 오래된, 할머니가 물려준 뚝배기에 강된장을 만들었다. 

식사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배가 고파 슬금슬금 부엌을 기웃거리던 나는 

오래된 뚝배기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빠글빠글" 소리를 들었다. 


강된장은 정말 "빠글이"이기도 했다.


화답하듯이 내 배가 꼬르륵거리면 엄마가 식사 준비를 마무리하다가 나를 쳐다봤다. 


"2분만 기다려, 똥강아지." 

똥강아지. 그 말도 참 이상했다. 똥강아지는 다른 말로 하면 똥개 아닌가.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엄마가 가끔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게 창피하고 싫었다. 

우아한 말 같지 않았다. 


지금이야 엄마가 나를 그렇게 부르면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차오르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가 되어야만 내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그래야만 간신히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세상에서

이제 그 우아하지 않은 말은 따뜻한 사랑과 위로를 의미한다.


우아하고 정확한 이름이나 말들이 사실 감추고 빠트리는 것들이 있다는 것,

정확한 말들도 언젠가는 부정확한 말들이 될 수 있다는 것,

 성인이 되고도 5-6년 뒤에서야 그런 사실들을 깨달았다.


앞서 이야기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알게 된, "어류"라는 말의 부정확성이라든가

지속 가능성이라는 세련된 단어 속에 종종 숨겨지고 덮어지는 더 복잡한 층위의 환경오염 문제들,

가축이라는 말속에 간단하게 덮어진, 공장식 축산 속 착취 당하는 동물들, 

정상인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불러오는 배제의 문제 등


'그런 걸 다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나도 매번 그 모든 것들을 다 생각하며 철저하게 나의 언어생활을 돌아보는 건 아니다. 

그러나 새로움과 가능성이 들어올 틈을 두는 것,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 

이 두 가지만 기억해도 좀 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사는 세상이면

피씨함 대신 유머를 생각할 일이 더 많아질 텐데, 아쉽지만 이제는 강된장 레시피를 적을 때가 온 것 같다. 


처음 강된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찌어찌 만든 된장의 한 종류라고만 생각했다. 

사람들이 올리는 사진을 보고 나서야 엄마의 빠글이가 강된장과 같다는 걸 알았다. 

아무튼, 레시피가 드디어 등장한다.





1.5인분 재료


된장 1 큰술 반

고추장 1 큰술

고춧가루 반 큰술

두부 150g 깍둑썰기

대파 한 대 잘게 자르기

양파 1/3 다지기

다진 마늘 2 작은술

자른 애호박 1/3 컵 

표고 1 작게 자르기

양송이 1 작게 자르기(새송이로 대체 가능)

홍고추 1 자르기

청양고추 1 자르기 

포도씨유 조금

물 300ml



레시피


1. 살짝 가열된 냄비에 포도씨유를 두르고 자른 대파를 올린 뒤 빠르게 볶는다.

*파기름 내는 이유. 맛있으라고. 사실 안 해도 되지만 확실히 풍미가 더 좋아짐.

2. 대파가 너무 익기 전에 양파도 넣고 살짝 볶는다. 

3. 양파가 살짝 투명해지려고 할 때, 두부와 고명을 위한 홍고추 몇 조각을 빼고 다른 재료들을 다 넣고

"빠글빠글" 소리를 낼 때까지 끓인다.

4. 빠글거리기 시작하면 두부도 넣고 불을 조절해 가면서 국물이 졸아들 때까지 계속 끓인다.

5. 충분히 되직해지면, 덜어서 밥과 같이 먹는다. 


이날 비가 와서, 집에서 남은 강된장과 밥을 먹으며 배혜정 도가에서 나온 우곡 생주를 곁들였는데, 

아름다운 조합이었다는 말을 전하며

비건 비빔밥 사이드 프로젝트를 종료한다.


다음 프로젝트는 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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