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서 하는 것들
"강남자가에 사는 여름쿨트루톤의 40대 entp 여성 직장인"
작년에 짧은 해외살이를 하고 돌아오니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그 전에 해외살이를 하고 돌아왔을 때도, '한국에만 있는' 것들에 유독 눈이 가곤 했었다. 한국인이라서 하는 것들을 한번 정리해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요즘의 내 삶을 되짚어보며 브런치에 적어본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다보니 자신을 잘 꾸미고, 자기 관리에 충실한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물론 세계 어딜 가든 그런 이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건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에서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그런 기준에 개인을 맞춰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객룩. 면접룩. 소개팅룩. 꾸안꾸?룩같은 것 마저도 옷의 종류와 질감, 느낌같은 것이 바로 연상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외모와 착장이 일반적이고 무난한지 정리되어있고 정형화되어 있다. 정보가 넘쳐나다보니 그 안에서 나름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긴 하지만 틀을 넘어서긴 힘들다.
퍼스널컬러가 유행하는 이유도 한국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 게 중요한 사회라 그런 것 같다. 컬러 전문가가 객관적으로 나의 피부톤과 헤어컬러, 눈동자 색 등에 맞춰 가장 나에게 어울리는 옷과 화장품을 추천해준다 - 외모에 관심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혹할만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단순 이미지 컨설팅에서 그치지 않는다. 퍼스널컬러도 '정형화'의 틀을 적용한다. 봄과 가을은 웜톤, 여름과 겨울은 쿨톤인데 이걸 또 16가지로 세분화해서 내 컬러타입을 더 정확히 분석하자고 얘기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타입을 더 정확하게 알수록, 어색하고 튀는 착장을 피하고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컨펌받은' 나의 컬러타입은 나를 안심시켜 준다. "나는 가을웜톤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겨쿨소프트래! 가서 받아보니까 확실히 갈색보다 파란색이 잘 받더라고!" 그렇게 패션테러리스트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실패의 여지를 줄여간다. 진단을 받고난 후엔 내 타입으로 열심히 검색을 해보면서 "아항 이런걸 입어야 되는구나, 오 이런 색조화장품을 사야겠군" 하고 정답을 찾아간다.
한국인들은 정답과 규정된 틀 안에 소속되었을 때 안정감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한국 외에 또 어느 나라 사람들이 16개의 MBTI타입 중 자기 타입이 뭔지 파악하고 있을까. "야 너는 I타입같아" "이런걸 보면 제 남편은 확실한 J타입인거 같아요" 사주보는 걸 즐기는 문화도 비슷하다. 사주는 지난 오랜 역사 속에서 자신과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사람의 인생을 분석한... 정형화된 틀의 끝장판이다. 정해진 팔자와 운명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검해보고 안정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거다. 혈액형으로 성격이나 성향을 판단하는 것도 그렇다. "너는 A형이라 꼼꼼해" "O형이라 친구가 많나봐" 대화의 많은 부분이 그런 정형화된 틀 안에서 스스로와 상대방을 파악하고 규정한다.
이런 게 꼭 나쁘다고 할 순 없다. 사실 나도 내 퍼스널컬러가 궁금해서 이번주에 거금을 주고 받고 왔다. 전문가가 분석한 나의 피부톤과 잘 어울리는 색깔에 대해 더 알 수 있어서 재밌는 시간이긴 했다. 그러나 내가 늘 사고싶어하고 한번 입어보고 싶은 (그러나 주변인들은 모두 말리는...) 앤틱하거나 에스닉한 스타일의 옷은 피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젊었을 땐 충동적으로 그런 옷을 사입고 주구장창 입고다니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조언을 듣고 아마도 내가 그런 옷을 고를 일은 더더욱 없어질 것이고, 망설이게 될 것이다. 안어울리고 튀는 옷도 입고 싶으면 입으면 되지만, 한국에서는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주변에서 나를 좋게 볼 테니까...
오늘 아침에도 충동적으로 산 형광빛 도는 노랑치마를 몇번이나 입었다 벗었다 했다. 내 눈에 예뻐서 샀는데, 퍼스널컬러할 때 "형광끼 도는 색을 입으면 얼굴에 회색빛이 돌고 확 죽어보이죠" 라고 들으니 그 옷을 입을 때마다 거울 속의 내가 그렇게 보인다. 결국 무난한 검정 치마를 입고 출근했다. 옷장 속 에스닉한 원피스도 외국여행갈때나 입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