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국 Jun 21. 2023

나라는 사람의 재질

비관 혹은 회의

내가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정신없이 살다가 간혹 쉼이 주어졌을 때 불현듯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젊을 때, 어릴 때는 더 자주 그랬다. 두 아이 엄마, 아내가 되고나서야 그런 난데없는 공허감을 잊고 사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이 일주일 출장을 간 이번주, 회사 창립기념일로 선물처럼 주어진 하루의 휴식에 그 질문이 다시 나를 찔렀다.


그 질문은 내 삶 그리고 내가 하고있는 모든 행동,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의 무의미함을 갑자기 일으켜 올린다. 휴일앞둔 어제까진 그렇지 않았다. 기분이 째지도록 좋았고.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떠들며 놀 생각에 신났다. 더욱 신이 나서는 카페에 글까지 쓰곤 늦게 잤다. 그리고 새벽에 잠이 깼는데.


친정가족방에 카톡이 와 있었다. 학술연수를 떠나는 오빠의 톡이 새벽 5시 4분에 와 있었는데 내용이 놀라웠다. 어렵게 합격한 대학원에서 큰 규모의 장학금을 지원받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경사였는데, 그 순간 내게 든 생각은 복잡했다.


오빠의 성취는 기복이 심했다. 학창시절부터 많은 실패와 고난을 겪었고 부모님도 걱정을 많이 하셨다. 둘째인 나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않고 살고 싶었고 모든걸 열심히 하고 대부분 알아서 했고, 평탄하기 그지없는 인생을 살았다. 극단적인 실패도 극단적인 성공도 없지만, 무난하고 여유로운 삶... 부모님은 그런 나에 안심하고 기복이 심한 오빠와 비교하며 칭찬해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간혹. 오빠는 엄청 큰 한 방을 날리는 순간이 있다.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돌진해서 뭔가를 이뤄내버리는. 그리고 그 순간의 부모님의 표정과 반응을 보는 것이. 사실 내겐 괴로웠다. 거기에는 내가 채울 수 없는 영역의 희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의 재질은 그렇게 무난하고. 밋밋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그 정도의 안정감과 만족감을 주기에만 최적화 되어 있었으므로.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었다.


복잡한 감정으로 운전을 했다. 단지 나는 오빠의 성공이 질투나는 것이다, 그 이상의 성취를 이뤄 더 나은 자식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뿐이다, 그게 뭐가 문제야? 라며 내가 이룰만한 성취들을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40대이고. 뭔가를 독하게 이뤄내기에 체력도 시간도 많지 않은 워킹맘이었다. 내 자식과 가족들 하루하루 건사하고 회사에서도 일 쳐내기에 바쁜. 몇년 후 내가 이뤘으면 하는 것들을 되새겨보다가 불쑥, 예의 그질문이 날 찔렀다.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결국 나라는 사람의 재질은 순도높은 공허감과 회의감으로 이뤄져있어서. 완벽한 성취에 이르기 전 의미를 무너뜨리고 말 것이다. 흐지부지 하고 말리라는 것을 지난 내인생이 보여주고 있잖아?


좋은 칼럼을 쓰고싶단 바람, 만화나 소설을 창작하고싶단 꿈을 늘 간직하고 있지만 30대 후반을 지나치면서 더이상의 '성장'은 쉽지 않은듯 하다. 자식을 키워내는 일의 행복과 고단함이 커서 다른 일상의 많은 것들이 거기에 매몰된다. 이건 그저 내 핑계다. 40대의 오빠도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많은 것을, 높은 목표를 이뤄내면서 살고 있는데... 아니 근데 애초에 꼭 높은 목표를 이뤄야하나?라고 또 불쑥 떠오르는, 나라는 사람의 재질.




매거진의 이전글 2023 공부&내공쌓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