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삶, and

영국 석사 유학 1년을 돌아보며

by 채유나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게 된 계기를 말하자면, 『해리 포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렸을 때 읽은 『해리 포터』는 내가 영문학의 길을 걷게 하는 데 일등공신이다. 그래서 『해리 포터』의 고장인 영국은 항상 내게 꿈의 나라였다. 학부 때, 글로벌 탐방 프로그램으로 영국 레딩에서 3일 간 수업을 들었고, 런던 관광도 짧게 다녀왔다. 이때의 경험으로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영국 레딩대학교 아동문학 석사 과정을 정식으로 밟게 되었다. 오퍼가 나올 즈음에는 코로나가 막 터졌던 시기라 대면 수업은 물론 해외살이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아 1년 미뤄서 2021년 9월에 입학했다. 다행히 내가 입학한 해부터는 대면 수업을 재개했고, 록다운도 겪지 않아 걱정했던 것보다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 받은 아이> 극장 팰리스 씨어터, 워너 브라더스 <해리 포터> 스튜디오 안에 있는 호그와트 모형


사실 처음 유학 왔을 때 영국이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적은 화장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식탁과 의자, 3시면 깜깜해지는 겨울, 하루에도 오락가락하는 날씨 등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많았다. 혹시 타국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외출할 때마다 매번 긴장하는 것에 지치기도 했다. 게다가 코로나로 여전히 뒤숭숭한 시기였기 때문에, 어서 과정을 잘 마치고 빨리 한국에 돌아가자는 계획뿐이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 다른 유학생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모두 과정이 마칠 즈음에는 영국에 남아 있고 싶다, 다시 오고 싶다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각자의 이유가 다른 건 물론이다. 또 나는 겨우라고 볼 수 있는 1년 동안 영국에 머문 거라 더 길게 머무른 사람과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본 영국은 어떠한지, 왜 영국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쓰고자 한다.



1. 환경 보호 실천


한국만큼 분리수거를 하는 나라는 없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잘하는 건 맞는 것 같다. 반면 영국은 길에 쓰레기통이 많이 있긴 하나 분류해서 버리게 되어 있지는 않다. 병을 따로 버리는 통은 따로 있긴 하나 영국 친구들도 보면 일반쓰레기와 플라스틱, 페트를 같이 버리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까지 같이 버린다... 다른 아시아 친구들도 놀라는 것을 보면 영국이 심한 건가 싶기도 하다. 환경 보호 이야기는 많이 나오면서 정작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지 않는다는 건 놀랍긴 하다.


하지만 점차 변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 모습을 볼 수는 있었다. 레딩대학교의 경우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로 분류된 쓰레기통을 설치했다. 기숙사는 여기에 음식물 쓰레기, 유리통을 따로 구비했다. 태양열 패널도 건물 위에 많이 설치했으며 친환경 대학 캠퍼스로 뽑혔다는 내용을 담은 깃발을 교내 가로등마다 걸어 홍보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몇 년 후 이산화탄소 배출을 많이 줄이겠다는 포부를 담기도 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기업 차원에서 환경 보호를 많이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택배 상품은 뽁뽁이나 비닐 완충재로 포장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테이프로 밀봉할 필요가 없는 박스에 담겨 온다. 세제나 샴푸 등을 담고 있는 대부분의 플라스틱 통은 물론이고 심지어 체크카드나 의류까지 recycled plastic으로 만들어졌다는 문구로 표기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소비자인 나도 기왕 사는 거면 recycled plastic으로 된 물품을 사자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마트에서 비닐봉지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들었다. 대신 채소나 과일을 담을 종이봉투, 그리고 장바구니를 잊은 경우를 대비한 재생 플라스틱 가방이 구비되어 있었다.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거나 친환경, 비건으로 만들어진 상품들도 굉장히 다양하게 있다. 초반에 유기농 닭고기를 살 때만 해도 고기는 초록색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었는데 몇 달 지나서 좀 더 작고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포장되어 있었다. 사 먹던 시리얼도 양은 그대로지만 비닐 포장을 줄였으며, 영국을 떠날 무렵에는 두루마리 휴지 역시 포장 비닐과 휴지심을 절감을 위해 한 휴지심에 2배의 휴지를 말아 놓은 것으로 바뀌었다.


환경 보호를 실천하고자 하는 모습을 현재 진행형으로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개인도 개인이지만 기업 차원에서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니 놀라웠다.


더 바디 샵 리필 스테이션


2. 장애인, 약자에 대한 배려


영국에서 외출을 하면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마트나 상점에 동행인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초반에는 영국에 장애인들이 많이 산다는 그런 무지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 그동안 타고 다닌 영국 시내버스가 모두 저상버스임을 깨달았다. 심지어 인도에서 휠체어나 유모차가 어려움 없이 바로 탑승할 수 있게 버스가 기울어지고 발판이 나오기도 했다. 버스 승객들은 당연히 기다리고 있으며 기사나 다른 승객들이 나와 탑승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를 떠올리며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 이동권이 영국만큼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애인 배려는 이뿐이 아니었다. 만일을 대비해 학교에서 주최한 취업비자 세미나를 참석한 적이 있었다. 놀랐던 점은 시각장애인 교직원이 있었고 그가 세미나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동료 교직원들이 그의 이동을 돕기는 했으나, 기본적인 세미나 오프닝은 그가 맡았다. 점자판을 준비한 것 같기도 하나 기본적인 내용은 다 숙지했는지 막힘없이 읽어냈고 동료 교직원은 발표에 맞춰 슬라이드를 넘겼다. 세미나 내용도 물론이지만 이 점이 정말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 많이 기억에 남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장애인 배려이긴 해서 주로 이야기를 했지만, 전반적으로 아이, 노약자, 여성, 성소수자 등 약자를 배려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3. 다양성 존중


런던은 세계 제일의 다인종 도시라고 한다. 영국으로 유학 가면 영국 발음을 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막상 도착한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영국인뿐만 아니라,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일본, 중국, 이집트, 네덜란드, 독일, 미국, 캐나다 등 다양한 나라에서 공부하러, 일하러, 살러 온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영어 발음도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덕분에 나도 한국식 발음으로 편하게 대화했기 때문에... 영국에서 영국 발음을 배우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보다는 많은 외국인들을 보기는 했지만, 영국은 그야말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었다. 그걸 가장 잘 느끼게 한 것은 웨스트엔드 뮤지컬이었다. 물론 주연들은 주로 백인들이 맡았다는 한계가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 아시안 등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공연하는 것을 보니 자연스레 한국 배우들만 나와서 공연하는 한국의 뮤지컬이 생각났다. 그동안 뮤지컬은 나와는 다른 무대 위 세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을 보자 신기하게도 무대 위 세계가 현실 그 자체로 느껴졌다.


인종은 물론이거니와 퀴어에 대해 이런 다양성을 주제로 한 행사, 특별 세미나, 전시가 열리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는 여전히 다양성 배척에 대한 문제가 영국에 남아있는 동시에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Reading in Perspective뿐만 아니라 영국의 모습에서도 다름에 대한 존중, 다양성을 배울 수 있었다.


뮤지컬 <위키드> 극장 아폴로 빅토리아 씨어터


4. 코로나 이후의 영국


유학하는 동안에는 다행히 록다운이 없었고, 위드 코로나를 시행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확실히 마스크는 한국만큼 열심히 쓰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코로나로 달라진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아마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비접촉(contactless) 카드 결제이지 않을까 싶다. 7년 전 영국을 잠깐 방문했을 때만 해도 현금을 받는 곳이 많았는데, 이제는 현금을 받는 상점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편의성은 물론 보안 면에서도 이쪽이 더 괜찮다고 한다. 한국은 여전히 현금도 받고 카드 결제도 IC칩으로 하니까 영국이 생각보다 기술 강국으로 보였다고 할까.


다음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재택+통근 형식의 하이브리드로 근무한다는 것이다. 재택을 일찍 도입했지만 위드 코로나로 들어서고 다시 주 5일 통근을 하는 한국의 친구들과 달리 영국은 재택근무를 병행하고 있다. 심지어 교직원들도 출근 요일이 정해져서 관련 업무를 이메일로 처리한 경우가 많다. 교수님들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통근에 문제가 생긴 경우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셨다.



5. 영국의 여유


이렇게 재택 하이브리드가 정착된 데에는 영국인의 여유로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영국의 상점들은 펍을 제외하고는 밤늦게까지 영업하지 않는다. 업무 처리도 빨리빨리 끝내고자 하는 마인드가 아니다. 영국에서 무언가를 신청한다면 그 일처리까지 기본적으로 며칠은 기다려야 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처음에는 이 느림에 그저 기다려야만 해서 답답했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몇 달 지나니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예상보다 빨리 된 경우에는 웬일로...? 하면서 놀랄 때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필자는 영국인의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여유로움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혹자는 제국주의 시절에 축적한 자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제시한다. 나도 이에 동의하기는 한다. 만약 우리나라에 쌓아둔 자본이 있었다면, 만일 다른 나라도 한글을 썼다면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영국이 겪은 역사, 시민혁명, 산업혁명의 결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로 인해 인간이 기본적으로 살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유학 생활 동안, 영국에서 몇 차례의 큰 폭풍과 20년 만의 최고 기온이었다는 폭염을 겪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태풍과 폭염을 비교하면 버틸 수 있는 정도이기는 했다. 하지만 영국은 갈색, 적색경보를 내렸고 (노란색<갈색<적색 순서로 강한 경보다), 웬만하면 출퇴근을 하지 말고 재택근무 하는 것을 강력하게 권장했다. 심지어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은 아예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에서 태풍 등이 예보되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라는 공지는 보았어도 출퇴근을 아예 하지 말라는 공지는 상상도 하기 어려워서 굉장히 놀라웠다. 출근이나 등교를 했을 경우에는 일찍 귀가하게 했다. 폭염이 있던 날 이케아에서 근무했던 친구의 경우, 담당 직원이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다른 직원들에게 물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폭염이 꺾인 이후 방문한 런던 지하철 곳곳에서도 수시로 물을 마시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위드 코로나를 굉장히 빨리 도입한 것은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위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영국이 인간의 노동력 그리고 인간의 살고 쉴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라고 생각했다. 식재료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저렴하지만 인건비로 인해 값비싼 외식비를 생각해도 말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면서 정작 그 노동력을 중요시하고는 있는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교직원 파업 안내장. 코로나로 감축된 인력에 비해 노동량, 노동시간이 많아 철도 등 곳곳에서 파업이 일어나곤 했다.


6. 한국에 돌아와서


물론 한국의 좋은 점도 많다. 코로나 초기대응은 가장 성공적이었으며, 많은 생명을 구했다. 기본적인 위생, 분리수거도 얼마나 철저한지 모른다. 일처리는 또 얼마나 신속한가. 그리고 영국에서 몸소 느낀 K-문화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이 K-문화 덕에 친구들을 사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혹 놓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것을 누리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는데 이를 잘 알고 감사하고 있는지, 빠르게 변모하는 사회에서 혹시 소외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우리의 터전인 지구가 오늘날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1년 다녀온 거고, 이제 귀국한 지 1달이 막 지났지만, 그래도 그 1년이 지나고 돌아온 한국은 생각보다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저상 전기버스가 더 많아졌고 보다 다양한 제로 웨이스트 상품들이 나타나기는 했다. 택배 상자도 이제는 종이테이프를 주로 사용하거나 테이프를 쓰지 않는 상자로 바꿔지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그대로였다. 우리나라가 이미 많이 발전한, 살기 좋은 사회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변화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무언가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길 줄 알았던 대한민국은 예상과 달리 거의 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겨우 1년에 많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애초에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영국 역시 7년 전 짧은 방문과 비교하면 변하지 않은 점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도 이미 많이 발전되었고 그래서 정체된 나라라고 생각했던 영국의 변화를 보고 온 나로서는 빨리빨리의 대한민국이 생각보다 거의 그대로인 점이 매우 놀라웠다. 그리고 여기에서 정체될 나라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꼭 내가 본 영국의 긍정적인 모습처럼 되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맞는, 보다 더 나은 방법과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한편으로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전 세계적 흐름을 고려하면 이러한 변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름을 읽고 추구하는 것을 배우고 온 나로서는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 그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읽고 직접 목격함으로써 견문을 넓혔다는 것이 내가 영국에서 배운 가장 큰 것이지 않을까.

런던 아이와 빅 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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