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다름을 읽다

Reading in Perspective

by 채유나


Reading in Perspective란?


지난 1년, 영국 레딩대학교(University of Reading)에서 아동문학 석사 과정을 수학했다. 아동문학 전공이라고 쓰지만 학우들끼리는 Reading in Perspective 전공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연구하는 작품은 아동문학이 맞다. 하지만 그저 소재라고 할까. 우리가 주로 배웠던 것은 아동문학 작품 자체보다는 이 아동문학을 Reading in Perspective로 읽는 것이었다.


Reading in Perspective, 가깝게 번역하자면 '관점 따라 읽기'라는 이 리딩은 학과장 교수님 피셜, 전 세계에서 레딩대학교 아동문학 전공에서만 다루는 연구 방식이다. 한국에서 학부, 석사를 영문학으로 졸업한 나에게도 너무나 생소해서 어려웠던 리딩으로, 논문을 제출하고 귀국한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 '그래서 Reading in Perspective가 뭔데?'라고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할 자신이 없을 정도다. 같은 수업을 듣는 박사생들에게 물어봐도 '우리도 우리가 뭘 하는지 모른다'라고 답하기 일쑤였다... 교수님들께서도 '어렵다'라고 하시니 말 다했다.


그래도 배웠으니 아는 대로 잠깐 이야기해보자면, Reading in Perspective는 사실 Close Reading, '세밀하게 읽기'를 학과장 교수님께서 좀 더 쉽게 풀어쓴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존 영문학에서는 비평이론과 선행연구를 참고 및 인용하여 작품을 읽고 논문을 쓴다. 반면 레딩대학교 아동문학 전공에서는 비평이론과 선행연구를 인용하지 않고 오로지 작품만을 Reading in Perspective로 읽는다. 그래서 Reading in Perspective로 쓴 논문 참고문헌 목록에는 매우 소수의 문헌들만 담겨 있다. 수업에서는 다른 연구자료들을 읽기는 했으나 이것도 역시 Reading in Perspective로 읽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짧게 말하자면, 작품에 있는 텍스트만 가지고 분석하는 것이다. 인물의 감정 등에 대한 추측(speculation)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다. 작품에 나타나는 것만 가지고 근거를 찾아 분석을 해야 했다. 흔히 영문학에서 다뤘던 정신분석학, 탈식민지론 같은 이론으로 분석하는 것은 당연히 안 되며, 만약 이것을 다루겠다고 해도 이 이론 역시 Reading in Perspective로 읽었다는 것을 나타내야 한다. 에세이를 쓸 때 think, feel, drive 등 주장을 불분명하게 하는 단어를 쓰는 것은 삼가야 했고, 따라서 claim, read를 주로 사용했다.



University of Reading 중앙 도서관, 인문대 Edtih Morley관, 강의실


대략적인 소개로는 Reading in Perspective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우니 예시를 들고자 한다. 그동안 쓴 에세이 중에서 교수님께 그나마 'good'을 받은 부분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가져왔다. 우선은 J. K. 롤링의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Phoenix)에서 덤블도어가 해리에게 릴리의 피와 가정, 그리고 보호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While you can still call home the place where your mother’s blood dwells, there you cannot be touched or harmed by Voldemort’¹


‘너가 네 어머니의 피가 흐르는 곳을 집이라고 부르는 한, 볼드모트는 그곳에서 너에게 손대거나 너를 해칠 수 없다.²


This is the narrator’s perspective on Dumbledore’s speech. According to the perspective, it is ‘you’ who Dumbledore was talking to. With ‘While’, the perspective claims condition of ‘there you cannot be touched or harmed by Voldemort’, ‘you can still call home the place where your mother’s blood dwells’. The perspective claims the possibility that the second ‘you’ could ‘be touched or harmed by Voldemort’. The perspective claims the difference between ‘be touched’ ‘harmed’ with ‘or’.


(윗글은 덤블도어의 발화에 대한 화자의 관점이다. 관점에 따르면, 덤블도어는 ‘you’에게 말하고 있다. 관점은 ‘While’로 ‘there you cannot be touched or harmed by Voldemort’(볼드모트는 그곳에서 너에게 손대거나 너를 해칠 수 없다)의 조건, ‘you can still call home the place where your mother’s blood dwells’(너가 네 어머니의 피가 흐르는 곳을 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를 나타낸다. 관점은 볼드모트가 두 번째 ‘you’를 ‘손대거나’ ‘해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관점은 ‘or’로 ‘be touched’(손대다)와 ‘harmed’(해치다)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³



풀이하자면 나는 화자가 ‘while’을 통해 볼드모트가 ‘you’에게 손대거나 해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고, ‘or’로 ‘be touched’와 ‘harmed’의 차이를 나타낸다고 읽었다. 또한 ‘you’ 역시 첫 번째 ‘you’와 두 번째 ‘you’를 다르게 읽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을 굳이 이렇게까지 읽어야 하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놀랍게도 이렇게까지 읽어야만 또 보이는 것이 있었다.



런던에 있는 서점 Folyes『해리 포터』 코너


다음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에서 마릴라와 앤의 첫 만남을 다룬 장면이다. 앤은 마릴라에게 자신을 'e가 붙은 Anne'으로 불러 달라 하고, 마릴라는 ‘Anne’이 ‘Ann’과 어떻게 다르냐고 반문한다. 이에 앤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Oh, it makes such a difference. It looks so much nicer. When you hear a name pronounced can’t you always see it in your mind, just as if it was printed out? I can; and A-N-N looks dreadful, but A-N-N-E looks so much more distinguished. If you’ll only call me Anne spelled with an e I shall try to reconcile myself to not being called Cordelia.’⁴


“어머, 아주 많이 달라요. 훨씬 근사하게 보이잖아요. 아주머닌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때, 종이에 인쇄되듯 그 이름이 마음속에 그려지지 않나요? 전 그래요. 앤이란 글자는 정말 끔찍하지만 ‘e’가 붙은 앤은 훨씬 품위 있어 보여요. 저를 ‘e’가 붙은 앤으로 불러 주신다면 코딜리어라고 부르시지 않아도 참아 볼게요.”⁵


According to her perspective,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spelling a name and pronouncing a name. [...] Besides, although there are some names that she imagined by herself and an exact name which she wants to be called, she wants Marilla to accept her name and call her with it. She keeps asking, first ‘Cordelia’, then ‘Anne’. It is because Marilla is the person who would call her with her name, even though Anne is the owner of her name. That means, although Anne has an ownership of her name, she knows that it is other people to call her name. Therefore, she has to hear what others call her and see it even if they call her what she does not want. Hence, the perspective claims that Anne wants to keep her ownership of her name, not only to imagine her name by herself but also to be called what she wants.


(앤의 관점에 따르면, 이름의 철자를 쓰는 것과 이름을 발음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 게다가, 자신이 상상한 이름이 있거나 불리기 원하는 구체적인 이름이 있다 해도, 앤은 마릴라가 앤이 원하는 이름을 받아들이고 부르기를 원한다. 앤은 처음에는 ‘코딜리아’, 그리고는 ‘앤’(Anne)으로 불러 달라 요청한다. 이는 앤이 이름의 주인이라 해도, 마릴라야말로 앤을 이름으로 부를 사람이기 때문이다. 앤은 이름의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지만, 이름을 부를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앤은 다른 사람이 부르는 대로 이름을 들어야 하고 그것을 보아야 한다. 앤이 원하지 않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도 말이다. 따라서, 관점은 앤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구상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고자, 이름에 대한 소유권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이 장면은 앤의 이름이 처음으로 밝혀지는 장면으로, 이전까지 화자는 앤을 ‘girl’이라고 지칭한다. 기본적으로 작품은 화자의 관점에서 쓰인다는 전제 하에 Reading in Perspective는 이 관점을 따라 읽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에세이를 쓸 때는 'According to narrator's perspective'(화자의 관점에 따라)를 자주 쓰게 된다. 앤의 발화의 경우, 'According to Anne's perspective'이라고 쓰나, 사실은 그 뒤에 'of narrator's perspective'가 생략된 것이다. Reading in Perspective에 따르면, 화자가 따옴표를 이용해 ‘앤이 말했다’고 서술했기 때문에 앤의 발화가 실제로 있었다고 읽지 않는다. 결국 앤의 발화까지 모든 텍스트가 화자의 관점에 따라 쓰인 것이기 때문이다.


풀이하자면, 앤은 이름의 철자와 이름의 발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본다. 마릴라에게 계속 앤(e가 있는 앤), 코딜리아라고 불러 달라고 권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에 대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남이 부르는 대로 자신의 이름을 듣고 또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름을 볼 수 있다(see)고 한 것은 앤의 관점에 따르면 앤이 자신의 이름을 볼 수 있다고('When you hear a name pronounced can’t you always see it in your mind, just as if it was printed out? I can;') 주장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불린 이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앤의 관점에 따라 읽어야 하기 때문에 '앤의 관점에 의하면 앤은 불린 이름을 볼 수 있다'라고 읽어야 한다. 이 리딩은 모두 텍스트 자체만을 가지고 분석한 것이다. 이를 추측이 아닌 분석이라 한 이유는 텍스트 자체가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약 내가 '앤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서운함을 느낀다'라고 하면 이는 추측이 된다. 텍스트에서 '서운함'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필자가 앤의 이름 소유권으로 나아간 것은 Reading in Perspective로 텍스트를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한 보다 깊은 리딩이라고 볼 수 있다. 텍스트에서 소유(own)가 직접 언급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추측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는 데 텍스트 하나하나를 분석했고(앤이 자신의 이름을 지을 권리,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릴 권리) 이를 바탕으로 낸 주장은 추측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University of Reading 도서관에서



어떻게 보면 관점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close reading한다. 이렇게 읽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에 수업에서는 주로 한두 문단을 읽곤 했다. 일반적인 문학 분석과는 굉장히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 읽어야 하는 건지, 지난 1년 내내 의문이 들었다. Reading in Perspective의 의의와 배운 소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Reading in Perspective 읽기: 다름을 읽기


위에서 다뤘던 Reading in Perspective를 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표면적인 것을 가지고 분석하기’라고 할 수 있겠다. 추측과 해석은 금물, 오로지 철저히 텍스트를 근거로 한 분석만을 해야 한다. 주어진 것만 가지고 분석을 하는 거면 모두의 주장이 비슷비슷할 것 같은데 또 그렇지는 않았다. 같은 텍스트가 주어져도 분석하는 것은 개개인에 달려 있기 때문인지 제각각의 분석이 내놓아졌다. 그렇다고 서로의 주장을 반대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어쨌든 텍스트가 분석의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텍스트에 있는 단어 한 자 한 자를 뜯어보며 분석하는 것이라 여기에서 더 깊게 읽고 사고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모든 작품을 이런 방법으로 읽으면 한 권을 읽는 데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교수님들께서도 모든 작품을 Reading in Perspective로 읽으시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리딩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제로 주어지는 에세이 역시 Reading in Perspective로 써야 하며 통과될 때까지 피드백을 받고 쓰고 또 써야 했다. 그 과정에 지친 나머지 보편적인 연구방법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몇 번을 걸쳐 진행했던 학과장 교수님과의 피드백 미팅은 Reading in Perspective에 삐딱해지려고 하는 나를 바로잡아주었다. 학과장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Reading in Perspective의 의의는 Difference, 즉 다름을 읽는 데에 있다. 다음은 아동문학 이론 수업 때 제출한 나의 에세이 중 한 부분이다.



[…] Narrators of stories for children are parent-substitutes. Just as we care – and should do – about what our children eat, see and do, about the quality of their schooling and health-care, so we should care about what they read.⁶


([…]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의 화자는 부모-대리인이다. 우리가 자녀들이 무엇을 먹고, 보고, 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학교 교육의 질과 건강 관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 그리고 가져야 하는 – 것처럼,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읽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⁷


[…] Although the perspective states ‘-and should do-’, there are more first ‘we’ who cared about what their ‘children eat, see, and do, about the quality of their schooling and health-care’ than second ‘we’ caring about what their children ‘read’, because the perspective only states ‘should’ in caring ‘about what they read’ unlike former caring which is stated with the retrospective present tense ‘we care’ as well. According to the perspective, there could be none of ‘we’ who cared about what their children read. The perspective claims that caring about ‘what they read’ had to be done by second ‘we’ as many as first ‘we’.



윗글에서 나는 첫 번째 ‘we’와 두 번째 ‘we’를 구분한다. 한 문장 안에 있는 ‘we’인데 이를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다름을 찾아 읽는 것이 바로 Reading in Perspective다. 화자의 관점에 따르면, 첫 번째 ‘we’는 ‘자녀가 무엇을 먹고, 보고, 하는지, 그리고 학교 교육의 질과 건강 관리’(‘what our children eat, see and do, about the quality of their schooling and health-care’)에 관심을 가진다(‘care’). 반면 두 번째 ‘we’는 ‘자녀가 무엇을 읽을지’(‘what they read’)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should care’). 따라서 두 ‘we’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각각 다르다. 게다가 두 번째 ‘we’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should care’) 반면에 첫 번째 ‘we’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데다(‘-and should do-‘) 갖는다(‘care’). 화자는 두 번째 ‘we’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제로 나타낸다. 이를 근거로 나는 첫 번째 ‘we’가 두 번째 ‘we’보다 더 많을 것이라 분석했다. 같은 ‘we’여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읽는 것이 바로 Reading in Perspective가 추구하는 바다.


읽으면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Reading in Perspective로 에세이를 쓸 때는 흔히 배우는 Paraphrasing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사실 절대 paraphrasing을 해서 글을 쓰면 안 된다! 윗글의 'what our children eat, see and do, about the quality of their schooling and health-care'를 그 이후로도 언급할 일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반복해서 나오는 대상을 they, them 같은 대명사로 바꿔 보다 짧고 간결하게 쓰겠지만 Reading in Perspective로 에세이 쓰면 그럴 수가 없다. 매번 인용 표기와 함께 원문 그대로 써야 하거나, 아니면 예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품사 정도만 바꾸어서 계속 써야 했다. 왜냐하면 'what our children eat, see and do, about the quality of their schooling and health-care'와 'they' 역시 같지 않고 다른 것이라고 읽기 때문이다. Reading in Perspective에서는 어떤 것과 그것의 paraphrasing 역시 완전히 같을 수 없다고 본다. 때문에 유의어 사용도 금물이다.


피드백 미팅에서 교수님께서는 전 세계에서 오는 학생들이 왜 이탤릭체를 ‘강조’의 의미로 읽는 것인지 의문을 표했다. 또한 수많은 전 세계의 대학교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읽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하셨다. 모든 것은 다르고 심지어 같은 것 안에서도 다름을 읽을 수 있다. 보편적인, 일반적인(General) 것에서는 언제나 예외가 있을 수밖에 없다. Reading in Perspective에 따르면 General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이론으로 작품을 읽기보다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closely, specific) 읽는다. 그 읽기를 통해 우리는 다름을 찾아낸다. 굳이 의미나 결론을 이끌 필요는 없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과 달리 Reading in Perspective는 나무를 본다. 대신 나무 한 그루를 꼼꼼하고 세세하게 하나하나 살펴본다. 그렇게 읽으면 나무는 물론 숲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첫 학기에 읽었던 책들 중 몇 권, 영문학부 스터디실에 있는 도서



Reading in Perspective: 다양한 것 읽기


Reading in Perspective를 배우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굉장히 다양한 것을 읽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기존 영문학 학부, 석사 시절에는 텍스트를 읽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텍스트 역시 시, 소설, 에세이, 이론서, 희곡 등으로 장르를 나눌 수는 있다. 작품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연극을 감상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Reading in Perspective로 더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가 읽은 것으로는 성경 창세기, 리뷰나 기사, Lamilly 인형 광고 리플릿 그리고 인형 포장 상자에 적힌 문구, <겨울 왕국> Let it Go 장면, TED 영상과 영상 소개 문구, 작품 내용이 아닌 작가 소개, 『해리 포터』가 아닌 해리 포터 스튜디오 가이드북 등을 읽었다.


해리 포터 스튜디오 가이드북 맨 뒷장에 있는 J.K. 롤링의 말. 이걸 Reading in Perspective로 읽었다.


알파벳 책도 Reading in Perspective로 읽을 수 있다.



심지어 Reading in Perspective로 텍스트만 읽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다양한 텍스트는 물론이고 책 표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그림책에 담긴 그림, 그래픽 노블, 만화, 레고 모형과 함께 있는 그림 설명서, 인형 등을 읽었다. 이들을 읽을 수 있나 싶었는데 놀랍게도 그게 된다... 이쯤 되면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읽는다고 봐도 되겠다. TED 영상과 그 영상의 소개글을 함께 Reading in Perspective 한 것으로 소개글이 영상의 전하고자 하는 바를 다르게 전하고 있다는 것을 읽어내기도 했다. 영화의 경우, 한 프레임에 담긴 것 하나하나를 분석하였고, 한 프레임에 담긴 인물과 바로 다른 프레임에 담긴 인물이 사실은 서로를 보고 있지 않으나 프레임 반복을 통해 서로 보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것 등을 읽었다. 그 이후로는 영상을 볼 때도 그냥 보게 되지 않았으며, 프레임 하나하나가 괜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오징어 게임> 등을 비롯한 K-드라마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던 때에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냥 듣고 말았던 K-문화의 힘을 주위 친구들의 모습으로 실감하기도 했다. 그래서 Reading in Perspective로 미디어를 읽는 것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텍스트는 주어진 단어를 읽으면 되었지만 영상이나 그림은 ‘이게 무엇이다!’라고 명확히 밝혀주지 않는다. 그래서 공원 그림을 읽기 위해 ‘프레임 안에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을 중심으로 위쪽은 하늘색, 아래쪽은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다. 또한 위쪽과 달리 아래쪽에는 물체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기 때문에 그림의 아래쪽을 땅으로 읽을 수 있다...’는 식의 분석이 우선이어야 했다. 영상의 경우는 한 프레임 안에 있는 모든 것, 컷이 바뀌는 것에 대해, 몇 초 동안 몇 번이나 바뀌는지, 각 컷마다의 Perspective와 Perspective가 보는 대상(프레임에 담긴 대상), 프레임 간의 관계 등을 읽어야 한다. 대사는 텍스트의 일환으로 읽을 수 있지만 동시에 사운드 중 하나로도 읽어야 했으며, 배경 음악과 에코 효과가 무엇을 나타내는지도 분석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주어진 것이 보다 많고 명확하지 않은 미디어를 읽는 것이 텍스트를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이전에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을 다룬 에세이를 제출했지만 좋지 않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에 체감하고 있는 지점이었다. 미디어를 읽는 것에 대한 흥미는 있어도 이를 Reading in Perspective를 잘할 수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은 넷플릭스 드라마 <Anne with an E>의 한 에피소드의 몇 장면을 Reading in Perspective 한 것으로 졸업 논문을 작성했다. 예상과 많이 다르게 작성된 데다가 쓰면서도 몇 번이나 후회했지만, 지도교수님의 가르침으로 무사히 완성시킬 수 있었다.


Reading in Perspective. 솔직히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지난 1년 동안의 석사 과정으로 이 Reading in Perspective를 알고 훈련했을 뿐이지 내 것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를 배움으로써 다양한 것들 안에 있는 다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기존에 보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좀 더 꼼꼼히 읽고 생각하게 되었고, 좀 더 다양한 것, 이전에는 읽을 생각도 하지 않던 것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다수와 다른 것에 대해 좀 더 열린 마인드로 유연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배웠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업의 길은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결정한 데다가, 빨리빨리가 미덕인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기에 석사 과정에서 읽은 것만큼 Reading in Perspective로 무언가를 더 읽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Reading in Perspective로 확장된 사고와 열린 자세를 습득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Reading in Perspective에 관심이 생겼다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를 가르치는 레딩대학교 아동문학 석사 과정을 신청하면 된다!



¹J. K. Rowling, Harry Potter and the Order of Phoenix (London: Pottermore, 2015), p. 769. Kindle.

²번역은 J. K. 롤링, 강동혁 옮김,『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5 (파주: 문학수첩, 2019), p.255을 참고로 한 필자의 번역이다.

³원칙적으로 Reading in Perspective에서는 paraphrasing을 해서는 안 되나, 이해를 위해 의역을 했음을 밝힌다.

⁴L. M. Montgomery, Anne of Green Gables (UK: Penguin Random House, 2015), pp. 34-35.

⁵루시 모드 몽고메리, 김양미 옮김, 『빨간 머리 앤』(서울: 인디고, 2018), pp.49-50을 기본으로 필자가 약간 수정한 번역이다.

⁶Barbara Wall, The Narrator's Voice (London: Macmillan, 1991), p. 273.

⁷필자의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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