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영국식(食)인가?

영글 | 영국 음식에 대한 단상

by 채유나

Q. 영국은 어쩌다가 음식 맛이 없다는 편견을 얻게 되었을까?

A. 비행기로 1시간 반~2시간 거리에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요리 잘하기로 유명한 나라들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영국은 이런 쟁쟁한 국가들과 경쟁에서 뒤쳐진 거죠 (중략)


<조승연의 탐구생활> 고든램지 ep에서 흥미로운 대화 진행을 보면서 기록이다. 인터뷰 영상 일부를 발췌하고 의역하여 Q&A로 표기하였고, 아래로 나의 생각과 경험을 보태었다.


영국은 디저트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에 가까우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유명한 스콘과 빅토리아 케익을 보유한 나라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영국을 오면서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알록달록 카페 디저트/음료 에셋은 단언컨데 한국이 월등히 잘한다. SNS 사진 감성 마케팅이 치열해서 그런가 카페 문화가 발달해서 그런가 한마디로 꼬집어 말할 이유는 모르겠다. 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섬나라로 풍부한 해산물 자원을 끼고 있으면서도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 비해 유통되는 수산물의 종류도 적고 요리 가짓 수 자체가 빈약하다. 고작해야 피시 앤 칩스만이 대중화된 영국 생선 요리의 전부다.




Q. 현재의 영국 음식 문화는?

A.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 여러 나라 음식이 섞여 다양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런던은 이제 가장 열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요리 문화를 가진 세계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실제로 영국에 거주하는 5년동안 나는 지난 2n을 살았던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다양한 나라 음식을 먹었다. 삼시세끼 집에서 한식을 해 먹는데 질리면 밖으로 나가 베트남 요리 분짜, 하와이안 포케볼, 일본식 소바와 데리야끼 덮밥, 대만식 딤섬 등을 소비하곤 했다. 돈을 내고 사 먹지 않더라도 여러 나라 친구들에게 얻어먹다 보면 자연히 글로벌 요리에 익숙해진다. 고맙게도 중국에서 온 기숙사 플랏메이트 갖은 중국식 집밥을 나눠주었고 인도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도 방과 후 플랏에 초대하여 밥과 디저트를 나눠주곤 했다.




Q. 어쩌다 영국에서 스타 셰프들이 만들어졌나?

A. 영국인 최초 Marco Pierre White 셰프를 뒤따라 고든 램지 셰프는 미술랭 별 3개를 받습니다. Albert Roux, Nicolas Denis 등 ... 영국 음식이 실용적이라는 편견에 지겨워진 20살 초반 젊은이들이 유럽으로 건너가 요리 유학을 마치고 훌륭한 셰프로 성장하고 요리 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결과 영국에도 다른 나라 못지 않은 좋은 레스토랑들이 생겨나고 스트릿푸드에서부터 파인 다이닝까지 왠만큼 구색을 갖춥니다. (중략)


그러고보면 한국에서는 분위기 좋은 식사를 하자고 하면 스테이크나 고급 일식 정도로 메뉴가 한정되었고 장소를 달리하는게 내 경험의 전부였는데, 영국에서 upscale 메뉴 선택의 범위는 너무나 넓어졌다.


A. 영국에서는 고든 램지를 포함해 Nigella Lawson, Jamie Oliver 등 많은 스타 셰프들이 생기는데 이것은 아마 영국이 전통적인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21세기 현대 사회에 들어 인간의 더 잘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욕망이 (셰프의 요리를 보는) 드라마와 결합하면서 스타를 배출하는 결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 최근에 간 레스토랑 이야기나, 뭐 해먹고 사는지가 날씨 다음으로 정말 흔한 대화 주제가 되긴 한다.




Q. 런던에서 좋은 요리를 경험하기 위한 추천 지역은?

A. 고든 램지 추천은 쇼디치와 노팅힐입니다. 셰퍼드 파이(shepherd's pie)나 코티지 파이(cottage pie)처럼 전통적인 영국 음식과 펍 문화를 즐길 수 있고, 한편으로는 글로벌 음식 문화를 다양한 형태로 길거리 마켓에서부터 팝업스토어, 6인용 테이블 하나로 운영하는 소규모 식당 등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펍 정말 독특한 장소다. 외관상으로 보면 술집 같은데 그 안에서 다루는 음료 종류가 많다; 차(tea), 탄산음료, 오렌지 주스, 칵테일, 위스키, 사이다(도수가 낮은 과일 주), 맥주 등등. 낮에는 카페 같은 역할로 음료를 주문해 시간을 떼우는 손님들이 흔하지만 피쉬앤칩스, 햄버거 등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아침에는 잉글리시브랙퍼스트를 주문할 수도 있고, 일요일 점심에는 선데이 로스트를 즐길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오븐에 구워낸 야채나 파이, 갖은 비법으로 끓여낸 그레이비 등으로 구성된 영국식 명절(?) 전통 상차림을 경험할 수 있는 곳도 펍이다. 크리스마스 디너를 회사 동료들과 펍에서 함께하면서 멋도 모른채 남들 따라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주문했더니 양이 너무 많아 반 이상 남겨 버렸다. 서너 시간동안 웃고 떠들며 먹다보니 어느 누가 이렇게 차려준다면야 맛있게 먹겠지만 바쁜 현대사회 내가 매일 차려먹을 것은 아니다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영국인들 또한 일하는 날들에 맞춰 간편한 세계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기 시작한건가 합리적 의심 같기도 하다.



영국은 전세계 각국에서 유입되는 사람들로 인해 특히 런던은 세계에서 한 손에 꼽히는, 인구 다양성을 자랑하는 도시가 되었고 그만큼 개방된 도시에서 문화 변화 속도는 무척 빠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런던에 진출한 비비고 식당이 브랜드 사업을 철수 하는 등 한식 수요가 많지 않았는데 한번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정말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걸 요즘 런던에서 체감하고 있다. 많은 곳에서 고추장과 김치를 변형한 '코리안'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영국의 식(食)이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이 나라 사람들의 개방성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 기록을 마침





글과 사진 by 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