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5년 고비마다 향수병이 찾아와 한국앓이를 한다. 유학길로 떠나 졸업 후 취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한국은 미래에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할 장소이자 과거에 살아왔던 나의 전부를 보관하는 장소이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당해 정신 없이 앓았던 향수병은 점차 시간이 지나며 나 지금 homesick이구나 스스로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졌다. 대부분은 내가 앓고 있는, 익숙하던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와야 해소가 된다. 미안하지만 현재의 내가 영국에서 교류하는 새로운 인연들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과거 시간을 가져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진을 돌려보는 것이다. 사진은 그 때 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그대로 저장하여 나의 시선을 정확하게 재현해낸다. 노트북 앞에 앉아 사진 아카이브를 돌아보면 과거에 함께하던 내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던 상차림 사진을 많이 발견한다. 식탁 하나에 여럿이 둘러앉아 차려놓은 음식들 위로 카메라를 서로 올려 가며 찍어낸 사진들, 카페 테이블에 각자 주문한 음료들을 모아놓고 찍은 사진들 ...
걔 중에서도 순서를 가리자면 음식 상차림 위로 찍은 사진보단 옹기종기 모여있는 음료 컵 사진을 볼 때 좀 더 많은 기억이 떠오른다. 추억을 찾으려 사진을 보는 것과 반대로, 어쩌다 찾은 사진으로 옛날 기억이 고구마 줄기 캐내듯 주렁주렁 끌려 나올 때가 있다. 세계 맥주집에서 각자 다른 맥주와 그에 맞는 컵을 받고 좋다하며 웃던 그 날의 분위기, 컵 주변으로 보이는 마스크에 코시국 집합 제한을 막 벗어난 그 날의 시기,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알아볼 수 있는 그 날의 사람들 ...
현재의 영국에서도 나는 좋은 분위기 속에 시기 적절한 모임을 찾아 좋은 사람들과 컵을 함께 든다. 나의 영국행은 지금껏 2n년 살아오던 것과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호기심에, 한국어 외로는 영어 밖에 할 줄 모르는 능력의 한계가 적절히 만나 이뤄지게 되었다. 길어진 체류 시간과 늘어난 짐만큼 미래의 내가 다시 펼쳐놓고 추억도 커졌고 이것을 되감을 사진들도 많이 보관하고 있다. 기숙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쭈뼛거리며 차 같이 마실래 플랏 메이트들에게 오설록 티백을 내밀고 함께 찍었던 사진, 긴장 속에 참여한 오리엔테이션 행사에서 옆 자리 누군가와 마치고 커피 한잔 같이 할래 만남을 기념한 사진, 펍으로 가서 파인트 맥주 잔을 부딪치며 하루를 끝낸 날의 사진, 처음으로 영국 어른을 만난다며 단정히 차려입고 찾아가 얻어마신 칵테일 몇 잔의 사진, 생일 기념 에프터눈 티 세트 3단 트레이 사진 ... 그 중에서도 가장 손꼽는 선명한 기억은 친구 집에서 자고 일어나 함께하던 티 타임이다.
이 사진을 보면, 중동 국가 출신인 그녀를 따라 통밀 식빵 위로 후무스를 바르고 향신료 Sumac을 뿌리는 나에게 혹시나 모른다며 딸기잼을 바른 조각을 준비하라던 그 날의 친구 목소리가 재생된다. 전날의 긴 대화에도 모자라, 잉글리쉬 블랙티가 너무 진하게 우려날 만큼 찻잔 한번 들 생각조차 하지 않고 주고받던 생각들도 사진 안에 담긴 것 같다. 찻잔이 하나 밖에 없다며 머쓱해하는 친구에게 우리끼리 집인데 아무 컵이면 어때 물컵이냐 찻잔이냐 분류를 미뤄두자던 웃음도 함께 떠오른다.
내가 처음 영국에 올 때는 그렇게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오히려 영국에 도착하고 나서 경험한 날들 때문에 나는 점점 더 영국에 살고 있는 이유를 찾고 있다. 한국앓이를 그렇게 하다가 섣불리 끊은 한국행 비행기로 시장에서 스테인리스 컵을 찾아들 때, 붕어빵 노점에서 종이컵을 찾아들 때 나는 다시 영국을 떠올린다.
탭 워터(tap water)를 주문하고 컵을 받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영국과 비교하며 괜히 내 나라 후한 물 인심을 추켜세우다가도 플라스틱 물통, 일회용 컵 사용을 의식적으로 줄이고 있는 선진국 소비 마인드를 아쉬워한다. 학교 캠퍼스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라는 공지사항도, 밋업 행사를 열면서 자신의 컵을 들고오라는 주최자 이메일도 사실 한국에서 없진 않았는데도 영국에서 더 진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더 많은 소비자 의무를 논의하는 것을 경험했다. 또한 이렇게 컵을 놓고 한 자리에 모이는 사람들의 대화들을, 나는 영국에서 더 많은 배움과 가치를 얻고 있기에 기회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한국에 태어나 자라고 공통 의무 교육을 수료한 사람들과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비슷한 '국룰'을 추구하는 삶을 이야기하던 반면 영국에서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대화 주제가 훨씬 크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한들 지금 영국에서 나와 만나기까지 거쳐온 나라들은 다를 수 있고 그러니 각자의 성장 배경만 이야기해도 '다름'으로 몇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다름의 대화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나는 부끄럽게도 과거의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다. 요즘은, 아직, 내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달랐을까 생각도 하지만 아마도, 지난 5년간 영국에서만큼 많이는, 아니었을 것 같다.
이번 주 영글을 쓰다 열게 된 사진첩에서 컵을 찾다 끝 없이 딸려 나오는 식구들 밥상 사진들에 한참이나 머물러야 했다.
어른들의 분주한 손놀림 속에 혹시나 어린 조카의 손에 물컵이 닿을라 조바심 내던 말도, 유리컵 깨지는건가 아니구나 안도하던 마음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집에 가야지, 마음을 잃지 않게 하는 기억들이다. 여전히 내가 선택한 영국에서의 시간을 전부 다 보내지 않았을 뿐이다. 과거와 사뭇 다른 컵을 들고 인사하는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지내려 한다. 그러면 미래에 한국에서 내가 떠올리며 추억할 것은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따뜻한 머그컵과 영국이 아닐까, 오늘 기록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