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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옥 Jun 24. 2022

덜 벌고 만족하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경쟁이 너무도 익숙해서 느리게 못 사는 인간인 게 지긋지긋한 건에 대하여

타오른다 나의 발등이, 그리고 익숙하게 다급한 나의 마음이


의지가 관성을 이겨내지 못할 때가 많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못해 캠프파이어 마냥 활활 타오를 즈음에야 '아, 좀 뜨겁네...' 하고 몸을 일으키는 사람으로서 하루 이틀 겪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따라 유독 이겨내고 싶은 습관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평균적인 사회인, 직장인의 속도로 삶을 살지 않으면 인생 망했다고 생각하는 습관. 발등이 불타고 있으면 '빨리 해야겠다'보다 '역시 나는 남들보다 너무 느려'라는 자괴감부터 들게 하고, 때때로 스스로를 미친 듯이 몰아세우며 발등의 불을 자초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사실 얼마든지 쉬고 천천히 일해도 문제없다는  머리로도 알고, 회사를 나온  2년이 지나는 동안 그럭저럭 먹고  경험도 쌓였다. 하지만 당장 인스타그램만 들어가 봐도 많은  빠르게 이뤄낸(혹은 그런 것처럼 보이려는) 사람들이 차고 넘쳐 절로 진땀이 난다. '뭐야, 쟤가 벌써 차를 샀어? 작년에 입사했다고 하지 않았나?' '얘는 회사를 다니면서 석사를 땄어?' ' 필드에서 골프 치는 사진이네. 어떻게 매주마다 골프  돈이 있지?' 나는 차, 석사 위, 혹은 광활한 잔디를 배경으로 상큼한 골프복을 걸친 이메다 기럭지를 갖는 데에 관심이 없지만(그래, 솔직히 기럭지는  부럽긴 하다) 이상하게도 내가 멀쩡히 직장 생활을 했다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어떠한 질문도 의심도 던지지 않고 무난히 살아왔다면 나의 취향이 됐을 '수도' 있는 것들을 갑자기 원하고 질투한다.




내가 이별하려고 하는 이 욕망의 잔재는, 어쩌면 내 생각보다 역사가 훨씬 길지도 모른다. 나는 유치원생이었던 나를 언어 영재로 만들겠다는 엄마의 진두지휘 하에 한글과 알파벳을 동시에 깨쳤다. 중학교 때에는 학교 시험에서 틀린 문제 하나 당 다섯 대, 열 대씩 맞았기 때문에 내겐 100점이 아닌 점수는 0점과 다르지 않았다. 앞서 나가고, 더 앞서 나가던 끝에, 나보다 너무도 잘난 사람들을 만나 도저히 앞서 나갈 수 없는 학교에 다다르자 나는 갑자기 이 경쟁이 더럽다며 자퇴를 선언했다. 내가 만약 그곳에서도 여전히 선두를 달렸다면 그 경쟁이 여전히 더럽다고 말했을까? 아니, 전혀. 아마도 그 시절을 홀딱 까먹고 또 다른 곳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성취하고 행복해하겠지. (지금보다 돈도 더 잘 벌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마치 싯다르타처럼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누려보고 욕망할 수 있는 모든 걸 소진하자 갑자기 현타가 와서 성인으로 변신한 게 아니다. 세상이 주목하는 무대에서 하고 싶은 게 더 많았는데, 탈락 후 방송에서 통편집되고 씩씩대며 뒷문으로 퇴장하는 오디션 지원자 3819번에 더 가깝다. 물론 그 뒷문으로 나가서 살게 된 상상도 못 한 삶, 예를 들어 길거리 버스커라던가 언더그라운드 음유시인으로서의 삶 속에서 예기치 못하게 무소유와 안분지족에 대해 배우며 이게 더 나은 길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외제차보다는 세계평화, 사노비보다는 자유로운 거지가 낫다고 진짜로 믿게 될 수도 있다. 그럼 정말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걸까? 전과는 완전히 다른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인간으로 거듭난 걸까?


갱생이 그렇게 쉬울 리가.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답습한다. 작은 질투만 마주해도 평생 실천했기에 몸이 기억하는, 더 빨리 더 많이 이뤄야 한다는 성공 공식이 눈을 뜬다. '걔네를 따라잡으려면, 질투하지 않으려면, 이 길에서 성공해야 해. 그러려면 지금 당장 책상 앞에 앉아서 월간 및 일간 계획을 세우자.'


그렇게 적게 벌고 많이 쉬겠다는 다짐은 당분간은 바짝 일하고 나중에 쉬자는 타협으로 변하고, 당연히 그런 속도가 맞지 않아 경쟁에서 튕겨져 나온 인간답게 힘에 부쳐서 침대에 붙어있으면 나약하다며 자신을 나무라고, 갑자기 인스타그램이 문제라며 계정을 비활성화한 다음 이런 깊은 자아성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내가 방금 그랬다는 게 아니다. 내가 또 이럴까 봐 개인 계정은 이미 몇 년 전에 비활성화해뒀다.)




어쩌면 내가 선택한 삶대로 평온하게 사는 데에 과거의 내가 - 정확히 말하면 그런 과거의 습관을 여전히 기억하는 현재의 내가 -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것마저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고 '그래, 어떻게 사람이 2년 만에 달라지겠어'라고 천천히 기다려주고 싶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아아, 오늘도 활활 타오른다. 급하게 한참 달려 나가는 나의 마음과 욕심과 욕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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