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느슨하게 먹으니 품을 수 있는 타인이 많아졌다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E에 가까운 I가 나온다. 그럼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어려워하는 걸까, 혹은 내심 즐기면서 싫어하는 척하는 이중적인 인간인 걸까.
오랫동안 전자로 살아왔지만 코로나와 퇴사를 계기로 후자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천재지변 때문에 고립되는 건 참기 어려웠다. 나 홀로 일을 하니 회사에서 영혼 없이 나누던 대화마저 그리워질 지경인 건 덤. 그래서 슬슬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나는 나 자신이 낯설 정도로 약속을 많이 잡았다. 예전 같으면 가지 않았을,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해져야 하는 모임도 성큼성큼 찾아가 열심히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사교적인 인간이었다고?)
그렇게 E에 발가락을 걸친 I의 소감은, 내가 전보다 마음의 장벽을 아주 조금 낮출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예전에는 대화의 물꼬를 트자마자 속으로 '아, 별로다'하고 단정한 다음 몰래 빠져나갈 궁리를 했었다. 그 사람이 정말 재미가 없었다고 하기에는 그걸 검증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은 셈이다. 왜 그렇게 성급히 결단했을까? 당시의 나는 다시는 볼 일 없을 사람의 생각 없는 말에 나의 인생을 걸고,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모습을 비추어 보고 그걸 모아 내면의 공허를 채우려 애썼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마도 아주 작은 불편함도 견디기 싫어하는 성미가 더해져, 조금이라도 언짢음의 싹이 보이면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러던 내가 지금의 비교적 느슨한 내가 되기까지 인류가 빠르게 진보해서 모두가 배려심이나 예의를 갖추게 된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전보다 덜 방어적으로 낯선 타인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만남들에 너무 큰 진심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고, 그만큼 상대방의 말도 가볍게 넘겨들을 수 있게 되었나 보다. 예전에는 그들의 칭찬과 비난으로만 채우던 내면이 이제는 단단하고 튼튼한, 혼자 길러낸 힘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다. 물론 그 힘의 지분은 여전히 작고 나는 자주 예민한 사람이기에 흔들릴 일이 여전히 많다. 그래도, 작지만 분명한 한 걸음이다. 감히 뿌듯하다.
그렇게 사람 만나는 일이 전보다 쉬워지니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타인의 삶에 대해 배우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의 삶을 반추할 기회가 생겼다. 나의 우물 안에서 나만 아는 이야기로 책을 쓰는 게 지겹고 막막할 때, 지나가듯 던지는 그들의 시선이 이정표가 되어주어 이제 출간 준비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도 뜻밖의 인연을 만나 막차 시간도 잊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일도 반가운 얼굴들을 만난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충만한 날들이다. (그렇다고 책이 알아서 써지지는 않으니, 이 기세를 몰아 다음 주에는 무조건 탈고를 끝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