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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옥 Jul 18. 2022

독립출판을 마치고, 잠시 쉬어가는 다짐

독립출판물을 완성했다. 아직 인쇄된 완성본을 받지 않았으니 완성했다는 표현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작품이 내 손을 떠나 인쇄소로 넘겨졌기에 내가 더 이상 글을 손볼 수 없다는 의미로 '완성'이다. 지난 4개월 간의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생생하고 고통스러운 독립출판 후기를 쓸 예정이다. 하지만 과거를 되짚기 전에 일단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이 시점에 느끼는 것들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부터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만큼 지난 발자국을 반추할 기운이 아직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말이지 독립출판은 사서 고생이 아닐까...!) 




1. 인풋을 늘리자.

글을 쓰고 다듬는 4개월 동안 인풋 없이 아웃풋만 뱉느라 괴로웠다. 일단 아무리 말랑한 글을 쓰려고 해도 나의 본업인 자기소개서 첨삭을 병행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기업친화적 어휘만 튀어나오더라. (예: 협조, 소통, 기여, 성취 등) 그래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글이 글로 읽히는 게 아니라 나의 글을 쓰레기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비교군처럼 느껴져서 점점 읽는 양이 줄었다. 이후 표지랑 내지 디자인하는 단계에 이르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만지고, 뜯어보고, 크기를 재어보는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면서 갈증이 쌓였는지, 마지막 탈고를 마치고 인쇄소로 파일을 보내자마자 갑자기 텍스트를 읽고 싶다는 욕구가 폭발했다. 그래서 밀린 뉴스레터도 몰아서 읽고, 랜덤한 브런치 계정에 들어가서 전혀 모르는 쓴 사람이 쓴 브런치북을 완독하고, 난생처음 포스타입에 가입해서 웹소설이라는 장르도 접해보았다. 확실히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읽으면 좋은 표현, 단어, 감성, 시각을 접하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다시 괴로워지기 전까지 많이 읽어야겠다. 책 말고 음악, 공연, 영화 같은 다양한 매체도 소비해야지.


2. 주변 환경과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자.

R의 동생이 한국을 방문하는 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서 더 이상 대청소를 미룰 수 없었다. 온 집안을 뒤집어엎고 손님의 눈에 거슬릴 수 있는 문틀의 얼룩까지 박박 지웠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시작한 일이기는 하지만, 역시 주변이 정돈되니 마음도 개운해진다. 문득 한참 책을 쓸 때, 힘들게 책상 앞에 앉았는데 키보드를 놓을 자리도 못 찾을 만큼 어지러워서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간 날들을 떠올렸다. (찔린다..) 


나의 그림자 같이 질긴 인연이자, 스스로에게 관대한 나조차도 정말 바꾸고 싶은 한 가지 습관이 바로 정리정돈을 더럽게 못하는 거다. 이 정도면 정신이 산만하거나, 물건에 대한 과도한 애착을 가지거나, 당장 쓸모없는 물건이 왠지 미래에는 꼭 필요할 것 같다는 평가를 과장해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사소한 것부터 수시로 치우고, 그러기 귀찮으면 애초에 물건을 집에 들이지 않고, 손이 가지 않는 건 과감하게 내다 버리는 노력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몸을 관리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거지같이 살아도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고 잠도 줄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움직이지 않는 시간에 비례해서 몸이 점점 돌같이 느껴진다. 한때는 목이 너무 뻐근해서 글을 쓰려고 카페에 갔다가 노트북을 30분도 쓰지 못하고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이러다가는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아 하반기에는 무조건 운동을 시작하려 한다. 재미를 붙이고 더 잘하고 싶어지는 운동을 찾으면 자연스럽게 몸을 관리하고 가볍게 유지하려고 하게 되는데, 부디 그럼 반려 운동을 찾을 수 있길...!


3. 물건보다는 경험을 사자.

1번 및 2번과도 연계되는 이야기다. 물건 대신 경험을 사면 집이 어지럽혀질 확률도 낮아지고, 시각을 확장시킬 기회도 생길 것이다. 전시회도 가보고, 평소에는 듣지 않을 장르의 음악도 들어보고, 영화관에서 틀어주지 않는 영화를 찾아서 보고 싶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돈이 드는 일이고 내 주머니 사정은 여전히 가난하지만, 같은 돈을 주고 내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을 사는 것보다는 값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겠다.


4. 감정이 다쳤을 때 효율적으로 회복할 방법을 찾고, 연습하자.

3월 한 달 간은 스스로가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생산성을 보였는데(매주마다 글을 3편씩 찍어내는 것도 모자라 인스타툰도 2개씩 그리고, 브런치 연재도 꾸준히 했다), 돌아보면 초심자 버프 받은 것 외에도 감정이 다칠 일이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던 덕분이었다. 4월에는 나를 조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은 다양한 사건들이 한꺼번에 터졌는데, 회복할 새도 없이 연달아서 공격을 받다 보니 글 쓰는 스케줄은 물론 일상 루틴 자체가 완전히 망가졌었다. 그것 때문에 계획이 조금 밀린 것쯤이야 큰 상관없지만, 그 과정 한가운데에 놓여있을 때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괴로웠다는 표현이 우습게 느껴질 만큼. 


예전에 CBT 치료를 받을 때에 그라운딩 방법을 배운 게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건 이미 문제가 터진 뒤의 대처법에 가까워서 한계가 있다. 쉽지 않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예방법을 연습하고 싶다. (그게 맘처럼 쉽겠냐만, 이런 불가능을 간절히 원할 정도로 참 힘든 지난 몇 달이었다.)


5. 조급함을 버리고 계획은 느슨하게, 루틴은 그것보단 조금 더 타이트하게

본래 계획대로라면 5월 말에 완성된 책이 뙇!하고 나왔어야 한다. 물론 내가 맘대로 세운 일정이니 어겨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아슬아슬하게 짠 것도 있지만, 5월이 끝나가면서 생각보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괜히 무리하게 계획을 짰다는 후회가 들었다. 적당한 텐션과 마감일은 생산성에 이롭지만 이를 넘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되면 완전히 손을 놓아버리게 된다는 것도 오랜만에 느꼈다. (생업의 경우에는 이런 이유로 고객과 약속한 마감일을 놓칠 수는 없기에 매번 보수적으로 일정을 잡는데, 거기에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혼자 일한다는 건 스스로를 한없이 몰아세울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나와 정확히 똑같은 위치에서 경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느슨하게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회사에서는 같은 해에 입사했거나 같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이 항상 있기 때문에, 그리고 꼭 그런 사람들이 아니어도 비슷한 연배나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성취에 대해 끊임없이 전해 듣기 때문에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빡세게 일하는 건, 보장된 월급이 없는 사람으로서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려는 본능에 가깝다. 그 본능이 때로는 과부하로 이어져 오히려 발목을 잡기도 하기 때문에(돈이 안 벌릴까 봐 무리하다가 자빠져서 진짜로 돈을 못 벌게 되는 셈이니,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이 아닐까) 이를 살살 달래면서 조절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 올해 상반기는 이를 조절하는 데에 대체로 실패한 것 같다. 다행히 돈이 되지 않는 분야에서 실패해서 별다른 경제적인 타격은 없지만, 남은 한 해를 어떤 속도로 보낼지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덕분에 당장 올해 8월까지 런칭을 하겠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려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도 예상 런칭일을 (최소한 당분간) 공개하지 않기로 하고, 나 자신에게 무기한 휴식을 줘보기로 했다. 말이 휴식이지 어차피 그 기간에도 참지 못하고 일도 계속하고 런칭도 준비할 걸 안다. 그걸 하면서 내가 대충 어느 속도로 일하는 게 편한지 살펴보고 거기에 맞춰서 느슨한 계획을 짤 거다. 물론 장기적인 계획만 느슨하고,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루틴은 책을 쓸 때와 동일하게 가져가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모여서 같이 일하는 작업모임은 꾸준히 지속할 예정.




생각해보니 브런치에는 독립출판물 예약 판매 홍보도 안 했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나 보다. 아무튼 당분간은 주문한 책 포장해서 택배로 보내기 전까지 푹 쉬고, 소회는 찬찬히 푸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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