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 2022 <비례적인 권리와 반비례적인 사랑> 후기
'나는 건강한 사람과 다르지 않아'. 하지만 동시에 '나의 아픔을 특별하고 고유한 정체성으로 봐줘'. 정신장애인으로서 타인과 (특히 애정을 기반으로 한 독점적)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마다 매번 이런 생각이 속에서 충돌해서 혼란스러웠는데 강의 덕분에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완벽하게 동질적인 존재일 수 없다. "너는 휠체어만 탔지 우리랑 다 똑같다"는 친구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연사님의 의견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오히려 내밀하고 사적인 관계에서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평등'만을 외치는 건 누군가의 고유한 굴곡을 지우고, 편리하게 거리를 두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나의 정신질환을 고백했는데 '그렇다고 네가 남들이랑 엄청 다른 것도 아닌데, 뭐'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입으로는 다행이라 말하면서도 내심 찝찝했던 이유를 드디어 깨달았다!)
이처럼 내가 호감을 느끼는 상대에게 나 자신을 타인과 다르지 않게 봐달라는 건 분명히 존재하는 차이를 마치 없는 척 덮어달라는 부탁이 아니다. 점잖게 말하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말아 달라는 희망사항, 좀 더 솔직해지자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인간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에 가깝다. 그렇게 균형 잡히지도, 비례적이지도 않은 무언가에 이끌리며 시작되는 사랑의 세계에서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을 규율해야 하는 비례의 원칙은 헝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서 매력 지수에 억지로 가산점을 부여하기보다는, 장애를 포함해 솔직하게 전시된 나의 면모를 샅샅이 관찰하며 사랑스러워 보이는 구석을 찾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픈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일수록 인간관계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졌던 이유도 배웠다. 차이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상처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피하기 위해 완벽한 '정치적 위생'을 고집하기보다는 감히 부딪히며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상처의 가능성을 0%로 만들어주는 완벽한 솔루션은 없고, 위에서 말했듯 오히려 너무 조심하면서 거리를 두는 모습 자체가 상처가 된 적도 많았다. 이러나저러나 다치는 사람은 생기고, 소수자로서 더 자주 다치는 입장이 된다고 해서 모든 인간관계를 피하거나 상대방을 못된 사람으로 단정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밑도 끝도 없고 무식한 혐오발언, 혹은 공적인 사안에서의 차별은 별개지만.) 사람들과 지내다보면 오해받고 상처받는 상황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는 것, 너무 당연한 말인데도 오늘에서야 그게 진짜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런 강연이 무려 무료로 매년 진행되고, 그걸 들으러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복잡해진 머리를 쥐어 뜯느라 바쁜데 정갈하면서도 위트있는 언어로 질문을 던지는 다른 사람들이 무척 멋있고 부러웠다. 조금씩이라도 다시 철학과 사회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