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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옥 Apr 06. 2022

고양이는 귀엽다. 쿨하다. 그리고 지혜롭다.

쿨내 풍기는 반려묘에게서 배우는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법'

쿨한데 귀여워. 귀여운데 쿨해. 근데 귀여워..


고양이가 내 무릎에 자리잡기까지 길게는 삼십 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게 다가오다가 가볍게 밟고 지나갔다가,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다시 밟고 반대쪽으로 넘어가고, 갑자기 뛰어올라와 꾹꾹이를 하다가 내려가고, 올라와서 엉덩이를 이런저런 각도로 돌리다가 가버린다.


목적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건 이해할 수 없는 비효율이다. 올라왔으면 그대로 있던가, 가버릴 거면 애초에 오지를 말던가. 삼십 분 간 지그시 밟거나 꾹꾹 눌러댄다고 내 다리의 형태가 좀 더 편안하게 바뀌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뇌가 호두만 한 고양이라지만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를 어렴풋이나마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고양이가 오락가락하는 이유가 뭘까? 정답: 그냥 그러고 싶어서. 처음 올라왔을 때에는 앉고 싶지 않았고, 여덟 번째에는 앉고 싶었으니까. 그전에 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중요하지 않고, 그래서 그 행동들은 역시 무용하지 않다. 고양이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


한때는 뭘 해도 오냐오냐 이뻐하고, 내가 먹여주고 재워주기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각박했는지 몰라서 이러는 거일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십 년 가까이 고양이를 키우며 이들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까마득한 조상의 기원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듯한 '쿨-함'을 느낀다. 본묘가 쿨한 줄 익히 알아서 허세처럼 휘두르는 그런 '쿨-함'이 아니라 존재하는 대로, 자신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맡기는 동물적인 감각이다. 생각이 너무 많은 인간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나름대로 머리를 쓰는 것 같고 한없이 귀엽지만(고양이는 진.짜. 귀엽다) 그들에게는 귀여움 받자고 이러는 게 아닐 것이다.


그냥, 생긴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식에 너무도 익숙한 존재인 것이다.


앞으로 내가 한 번에 결정했어도 될 일을 여덟 번 번복하더라도 그런 나의 자연스러움에 기뻐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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