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옥 Apr 01. 2022

프리랜서도 퇴근할 줄 압니다만

돈을 더 주겠다는데도 주말 작업을 거절하는 이유를 알려드립니다


퇴근을 즐거워한다고 일이 꼭 괴롭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일이 너무도 즐거운 나머지 영원히 퇴근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퇴근 공지에 예약 의사나 기타 문의사항을 전달할 수 있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적어두었다고, 퇴근 후에도 일하겠다고 선언한 건 아니듯. (무려 '뒤도 안 돌아보고 행복의 나라로' 갔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프리랜서는 자신의 호흡에 맞춰 일을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을 정해 움직인다. 돈이 궁해지면 휴일을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의뢰를 거절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지킨다. 왜냐고? 내가 그러기로 했으니까. 번아웃을 방지하려고, 그냥 노는 게 좋으니까, 평일 대낮에 한적한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기분은 꽤 짜릿하니까- 등과 같은 이유는 많지만 그걸 고객한테 주절주절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럼에도 가끔은 TMI를 터뜨리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다. '왜 주말 동안 작업이 불가한가요?' '추가금을 제시했는데도 내일까지 안 해주신다니 이해가 되지 않네요'와 같은 반응이 생각보다 흔해서 그렇다. 프리랜서가 무슨 자판기도 아니고, 돈을 넣자마자 24시간 365일 결과물을 출력할 걸로 기대한다. 그러다가 손가락을 튕기면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일주일 휴가, 안식월이 튀어나오는 줄 안다. (나도 그럴 수 있을 줄 알고 덥석 프리랜서가 된지라 안 그래도 억울하다.)


일을 줄 때 받지 않겠다고 하면 절박하지 않다고, 열정이 부족하다고, 혹은 경제관념이 박하다고 단정한다.


돈에 대한 나의 뜨거운 사랑을 폄하하지 말라. 이래 봐도 통장 잔고 쌓이는 맛에 일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주 4일만 일하고, 오후 1시에 출근하는 내가 당신보다 돈에 대한 미련이 적어 보이는 건 아마도 돈을 좋아하는 이유가 달라서 그럴 것이다. 내가 일하는 시간과 공간의 결정권을 남에게 맡기고, 이를 견디는 대가로 얻는 돈은 내게 위자료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 내가 버는 돈은 자유를 만끽하며 일하면서도, 누군가 힘들게 번 월급의 일부를 내게 주고 싶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걸 뜻한다. 그래서 나에게 돈은 칭찬과 존경의 표상이자 원동력의 원천이다.




사무실에서 9 to 6를 보내는 모든 사람이 미련하다는 게 아니다. 나도 그런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면 절대로 회사를 뛰쳐나오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지겨움보다는 불확실성을 더 잘 견디고, 자극을 탐닉하는 기질을 타고났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수시로 요동치는 기분에 관대한 업무 환경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먹고살기 위해 내게 조금 더 어울리는 옷을 입기로 했을 뿐이다. 그게 사원증을 두른 정장 차림이 아니라고 해서 내가 시켜만 주면 아무 때나 일할 정도로 돈에 미쳐 있거나, 반대로 세속을 떠나 무소유를 실천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그런 의미에서 금요일인 오늘은 행복의 나라에서 보내는 하루다. 뒤도 안 돌아볼 거니까 나를 찾지 말라. (한 오백만 원짜리 작업이면 좀 고민해볼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