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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옥 Aug 24. 2022

우리네 삶이란 모두 한 맺히고 외로운 것

뮤지컬 <서편제> 후기

시작은 나의 최애를 실물로 보겠다는 사심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가 출연하게 될 작품이 가수 이자람도 출연하는 <서편제>라는 걸 알고는, 둘이 같이 공연하는 날짜를 일부러 골라 티켓팅을 했다. 판소리가 주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고, 비록 지나가는 수준이었지만 이자람의 음악과 명성에 대해 익히 들은 만큼 이 기회에 라이브를 듣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 끝난 후 한 줄 요약: 그렇게 오늘 나의 최애는 이자람 씨로 바뀌었..



지독한 운명을 울면서 삼키면 한이 되고, 삶이 된다


출처: 메트로


'한'이 쌓이고 쌓여야만 소리를 찾고 명창이 될 수 있다는 유봉의 믿음. 그것은 실력의 벽에 부딪혀 허덕이던 송화의 눈을 멀게 하는 잔혹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서편제>를 보기 전, 내가 서편제에 대해 알고 있던 유일한 조각이 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난 사실 눈이 멀게 된 뒤의 송화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제일 궁금했다. 왜냐면 이 극도, 혹은 대부분의 인생도, 가장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 절망을 꼭꼭 씹어 삼키고 나의 안에 밀어 넣듯 쌓으며 남은 생을 살아야 하고, 그게 어쩌면 문제의 사건이 닥친 순간보다 더욱 잔인한 고난이다. 그렇게 도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운명을 기어이 수용하고 나면, 그 사람은 분명 잔잔하면서도 거대하게 변해있다.


가족이자 스승으로 믿고 따르고, 절절하게 사랑한 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앗아갔다는 사실을 가지고 몇십 년을 더 산 송화는 어땠을까. 처음에는 가슴을 후비는 절규를 내질렀지만, 시간이 지나 송화는 눈이 먼 채로 아버지와 공연을 하고 아버지가 든 천 한 조각에 의지해 그를 따라다니는 인생에 적응한다. 그런 아버지가 싫어 멀리 도망친 동생 동호와 극적으로 재회를 한 순간에도, 송화는 아버지 곁에 남아 소리를 하겠다는 의지를 담담하게 내비친다. 그것은 자신을 구속하는 존재에게 무력하게 붙들려있는 자의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눈이 멀기 전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더 잘하고 싶었을 뿐이다. 오히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소리에 집중하기 좋아졌다며 살짝 웃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가슴속 응어리진 무언가를 단단한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의 무게를 느꼈다.


소리를 좋아하고 계속하고 싶어 했지만 잘 되지 않았을 때, 눈이 보이던 송화는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선택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눈이 멀어 할 줄 알고 의지할 수 있는 게 오직 소리만 남은 세상에 던져지자 송화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여생을 사는 유일한 방법이란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그녀에게 그렇게 사는 게 참 대단하고 엄청나다고 칭찬하는 자가 있었다면, 달리 사는 방법을 몰랐다는 답변이 돌아올 걸 안다. 그 진리를 깨닫는 것이 곧 한이고, 그러고 보면 세상 모두가 살면서 무수히 많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고난을 지고 살아가니, 우리 모두의 삶 역시 다 한이다. 차마 죽을 수 없어 살기 위해 던져지는 매일을 살아내는 모두의 가슴속에 한이 있다. 그래서 눈먼 송화가 담담히 나이 드는 과정을 보며 같이 눈물 흘리는 관객이 많았나 보다.



처음부터 혼자였고, 그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출처: 뉴스핌

송화에겐 끔찍이 사랑하는 동생 동호가 있었다. 서로 의지하며 전국을 함께 유랑하고 소리를 배웠지만, 어느 날 동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소리를 따라가겠다며 송화를 떠나간다. 늘 자신을 이끌던 아버지마저 끝내 죽는다. 이미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송화는 그렇게 문자 그대로 천애고아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 누가 봐도 혼자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녀의 곁에 함께 하던 가족이 있었을 때보다 그렇게나 많은 게 달라진 걸까?


동호가 가족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아버지를 증오하기도 했고, 자신이 싫어하는 소리를 강요당하며 전국을 떠도는 힘든 삶에 지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은 '서양 음악'을 하는 악단을 따라 가출을 하기로 결심하지만, 그 선택을 내리면 무척 사랑하는 누나를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할 걸 알고 갈등한다. 그럼에도 그가 떠나기로 선택한 이유가, 그가 이루려는 꿈을 누나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송화가 자신은 계속 소리를 하고 싶다며 동호와 함께 떠나지 않기로 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인생에서 오직 자신만이 주인공이기 때문일 뿐이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남의 손에 삶을 맡겨버리면, 그는 남의 곁에 남아 남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언정 더 이상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사는 과정에서 누군가 나의 곁에 여전히 있다면, 그건 각자 혼자 걷던 길이 우연히 겹쳐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가족으로 뭉쳐 모두가 한 뜻으로 소리를 쫓던 송화와 동호의 어린 시절이 그러하다. 그러다가 길이 틀어지면 우리는 자연스레 이별을 하고 구태여 남의 길을 억지로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누구를 탓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다. 누군가 옆에서 같이 걷고 있었을 때에도 사실 우리는 각자의 길 위 홀로 서 있었으니까. 송화가 동호와 아버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가족과 함께였을 때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혼자 묵묵히 수련하며 살 수 있었던 이유도 그 깨달음에 있지 않았을까.



기타 잡다한 감상


출처: 국민일보


1. 

초등학교 시절 문화센터에서 판소리를 배운 적이 있었다. 말이 판소리지 사실 대부분 민요를 배웠고, 판소리 중 일부는 춘향가의 <사랑가>를 살짝 맛본 게 전부지만(돌이켜보면 초등학생 주제에 멋도 모르고 그런 남사스러운 가사를 읊었었구나..) 악보 없이 오직 귀로만 음의 높낮이와 속도와 표현법을 익히는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그 나이대에서 쉽게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 판소리 특유의 구성진 느낌도 참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문화센터 수업 개근하고 센터에서 주관한 판소리 공연까지 올렸던 나는 대체 어떤 어린이였던 걸까..?


그 뒤로도 풍물패를 하고 민요를 부르며 국악과 꾸준히 연을 맺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판소리를 배우거나 공연을 보러 가기에는 뭔가 막연한 거리감이 느껴졌었다. 일단 판소리는 완창을 하기까지 6, 7시간이 걸리니 공연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처음부터 끝까지 지치지 않고 몰입할 수준으로 내가 덕후라던가 문화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음), 나의 취향을 엇나가는 퓨전 국악 말고는 보다 가볍게 접할 기회가 없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말 예상치 못하게 오늘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심청가를 꽤 길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극을 마무리하며 배경음악이 점점 커지기 시작할 때 스피커를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뻔히 아는, 심봉사가 심청이 앞에서 눈을 뜨는 장면인데도 내가 심청이 앞에 엎드린 심봉사가 된 것 같고 자신을 보라며 울부짖는 심청이가 된 것 같아서 절로 눈물이 났다. 진짜로. 그 정도의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과장 없이,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구성진 가락이 마음을 쥐락펴락하다가 가슴을 훅 뚫고 나가더라. 당분간 영상을 찾아볼 것 같은데, 역시 라이브 앞에 장사 없다는 거 솔직히 안다. 이러다가 뮤지컬 폐막하기 전에 한 번 더 보러 갈지도... 


2. 

그리고 감정이 극에 달하는 매우 중요한 장면에서 갑자기 유봉이 들고 온 북이 객석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회수를 포기하고 다음 장면으로 당연히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퇴장해야 하는 시점에 갑자기... 주섬주섬 무대 아래로 내려와 북을 줍고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 무려 비척비척 힘없이 걸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서, 그 느낌 그대로 살려서 매우 힘없이 무대 밖으로 툭 떨어져서 북을 힘겹게 툭 올리고 더욱 힘겹게 올라오는데 솔직히 그 누구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송화가 구간반복 재생 걸린 테이프처럼 '아버지...!' 하는 대사 반복하는 것도 웃참 실패...했지만 극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위트 있게 소품을 회수하는 센스가 너무 좋아서 다들 웃다가 박수로 넘어갔다. 안 그래도 북 세워둔 채로 그 옆에 일어나서 대사를 친다던가 급하게 움직일 때에 굴러갈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는데, 진짜 무슨 굴렁쇠처럼 주르륵 굴러가서 퇴장할 줄은 몰랐음. 나중에 퇴장할 때 보니까 떨어진 곳이 무대 바로 앞 OP석이라 거기 앉아계신 분이 진짜 깜짝 놀라셨겠더라. 조금만 더 가까웠어도 무릎에 안착했을수도..


3.

FNC는 앞으로 소속 아티스트에게 올블랙 의상을 보다 자주 입히도록 하세요. 이왕이면 하늘하늘한 실크 셔츠와 블랙 진의 조합으로 부탁합니다. 오늘 '그 장면'처럼 말이죠. 후... 아무래도 진짜 한 번 더 보러 갈 것 같아서 두렵다. 


4.

만약 아끼는 배우가 나오는 공연이라면, 자리를 아무리 가까운 데에 예매했어도 오페라글라스는 꼭 들고 가십쇼. 무대에 같이 올라서서 바로 옆에서 얼굴을 쳐다보는 듯한 (행복한)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챙기는 거 까먹었다가 기억났을 때 다시 집에 가기 귀찮았는데, 귀찮음을 무릅쓰고 챙겨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백만 번 했다.



5.

어느 공연이든 끝나고 나면 인파를 피하기 위해 모두가 퇴장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가는 편인데, 오늘도 그러고 여유 있게 나갔더니 공연장 밖 차도를 따라 사람들이 쭉 줄을 서있었다. 택시 기다리는 줄인가 싶었는데 다들 카메라를 켜고 있어서 설마..? 했더니 역시나 그게 최애 퇴근길 동선이었음. 그래서 얼떨결에 나도 합류해서 대체 트위터에서만 보던 연예인 퇴근길이 어떤지 체험을 하게 됐다. 그렇게 얻게 된 건 5초짜리 동영상과 연예인 손바닥을 아주 가까이에서 봤다는 뿌듯함. (위 스크린샷 참조 요망. 공포 영화 아님, 납치당하는 현장 아니고 인사하는 거임)


6.

이미 다음 티켓팅 날짜 찾아보고 있는 나는 이번 달에도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공연 이미지 출처 페이지

- 메트로: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14031600084

- 뉴스핌: https://www.newspim.com/news/view/20170908000168

-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732488&code=61171111&sid1=c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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