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내가 프로그래머가 될 상인가

퇴사하고 디지털 노마드를 꿈꿨지만 나는 뼛속까지 문과생이었다

by 연옥
SSI_20201211164946_O2.jpg 누가 내 얼굴 좀 보고 '그대는 딱 봐도 문사철이 어울리고 알고리즘적 사고력이 부족하게 생겼군요'라고 해줬더라면... 하지만 나는 수양대군만큼이나 답정너였다


‘3개월 만에 무조건 개발자로 취업시켜드립니다.’


퇴사를 결심하고 SNS를 떠돌다가 우연히 마주친 광고였다. 비전공생도, 문과생도, 프로그래밍을 한 번도 공부한 적이 없더라도 등록금 700만 원을 내면 취업이 가능하다는 말에 솔깃했다. 부트캠프라는 이름답게 과제를 끝내지 못하면 집에 보내지 않고, 이해가 안 되면 될 때까지 뇌에 때려 박는다니까 가능하다고 믿었다. 설명회에 참여하기 전부터 나는 등록을 마음먹었고 일시불 결제를 위해 신용카드 한도를 올렸다. 직장인에게도 손 떨리는 금액인 건 맞았지만 다음 달에 성과급 들어오니까, 뭐. 퇴사 이후에 뭘 할지 막연했던 참에 나의 불안을 메워줄 수 있는 좋은 구실이 생긴 것 같았다. 그걸 일시불로 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는 (최소한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돈을 많이 줬고 그래서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 월급이 착실히 통장에 꽂히는 삶에 축축이 녹아든 사람은, 돈줄이 끊긴 뒤에 느끼는 절박함을 모른다는 걸. 그런 돈을 한 번도 벌어보지 못했던 학생 시절의 씀씀이로 돌아가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과 깊은 굴욕이 동반된다는 걸. 그리고 그걸 견뎌내는 동안 수입원이 될 거라고 믿었던 계획이 틀어지면 그 충격은 몇 배로 더 크다는 걸.


무엇보다, 복잡한 알고리즘을 다루는 프로그래머가 되기에 나의 뇌는 한 톨의 숫자도 묻지 않은 순수한 문과의 그것이라는 걸 나는 잊고 있었다.


이런 최악의 변수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혼돈의 카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걸, 퇴사 디데이를 설정하고 들뜬 내가 알 리 없었다. 아 몰라, 돈 내면 프로그래머로 만들어 준다며! 나 돈 많으니까 그걸로 내 적성부터 알고리즘 친화적으로 바꿔주겠지 뭐! 예습한답시고 퇴근 후 노트북을 붙잡고 쩔쩔매다가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나는 이런 주문을 외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는 와중 회사는 주경야독하는 내 사정도 모르고 새벽과 주말까지 심하게 굴려댔고, 나는 이럴 바엔 그냥 마음 편하게 공부에나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퇴사를 계획보다 3개월이나 앞당겨버렸다. 내가 포기한 3개월치 월급, 3개월 더 빨리 프로그래머로 취업해서 메울 거라고 씩씩거리며 다짐했다. 당시의 나는 정말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과연 이 순진한 문과생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시리즈의 제목은 <인문학도, 연봉 1억 디지털 노마드로 신분 세탁하다> <발리에서의 워케이션: 일출 요가와 선셋 서핑을 즐기던 와중 구글에서 러브콜이 왔는데 어쩐담> 정도가 되었을 텐데…




혹시라도 착각의 여지가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말해두겠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부트캠프 시작 전에 참가자들끼리 모여서 예습 스터디를 한 게 참 다행이었다. 정해진 진도에 맞춰 각자 공부를 하고 과제를 풀어와야 했는데, 과제 결과를 화면에 띄워두고 해제를 하면서 나의 텅텅 빈 머리가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스크롤을 하면 배경색이 휘황찬란하게 변하고 상세 페이지도 당장 온라인 쇼핑몰에 등록할 수 있는 퀄리티인데, 나는 초등학교 컴퓨터 시간에 메모장에 HTML 다섯 줄 적어서 휘날리는 태극기 gif를 띄우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걸 독학하면서 혼자 볼 때는 애써 흐린 눈을 할 수 있었지만, 여덟 명의 동기들 앞에서 빔 프로젝터로 띄워서 공개처형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니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개발자가 될 머리는 아닌 게 분명했다.


이걸 보고 부트캠프를 기웃거리다가 시무룩해질 문과생이 있을까 봐 덧붙인다. 분명 이과생의 코를 눌러줄 만큼 놀라운 잠재력을 보유한 자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엉덩이가 무겁거나 암기력이 비상하거나, 프로그래머가 되어서 꼭 이루고 싶은 비전이 있어서 죽을힘을 다해 해 보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부트캠프에서 어떻게든 멱살 잡고 끌고 갔다면 반쪽짜리 프로그래머는 될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남들은 스펀지처럼 지식을 흡수할 때 나만 발 각질 미는 돌덩이처럼 느껴지는 기분을 감내하면서 돈까지 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로스쿨에서 그렇게 매일 울며 겨자 먹는 삶을 살다가 결국 자퇴했고, 회사에서는 비슷한 절망을 월급과 맞바꾸며 억지로 살아왔었다. 짧은 인생, 앞으로는 되도록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며 날로 먹기로 결심한 나였다.


d6de5744a45af72885509337ba7b539f3bda41a309118c44a40c8a020f8357ca.jpg 세 번이나 탈주해 본 나는 세계관 최강자가 분명하다.


그래서 전액 환불이 가능했던 마지막 날까지 버티다가 탈주했다. 아, 허망하게 날아간 디지털 노마드의 꿈이여! 그나마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발리에서 일할 가능성은 어차피 없다는 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등록금으로 지불했던 700만 원이 다시 돌아온 건 훨씬 더 큰 위안이었다. 안 그래도 25일이 되었는데 통장에 미동도 없는 백수의 삶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던 중이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3개월치 월급이라고 생각하고 딱 3개월 놀아보자. 돈도 시간도 넘쳐나는, 살면서 몇 번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때가 한여름 즈음이었으니, 만약 내가 다시 회사를 다닐 계획이 있었다면 곧 닥칠 하반기 취업 시즌을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나의 프로그래밍 적성만큼이나 0에 가까웠기 때문에 지금이 몇 월인지, 채용공고는 언제쯤 올라오는지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당시에는 가뿐하게 무시했던 취업 시즌이 앞으로 내가 목을 매게 될 프리랜싱 성수기가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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