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세븐(7)은 무슨, 다 부질없네

7번째의 이식, 화유(화학적 유산)로 종결 (동결 4차)

by 당신의 계절

유산 이후 몇 개월이 지나, 몸이 많이 회복되었고 남은 배아 1개를 위한 5차 동결이식 준비를 시작하였다.

무려 시험관 9회 차였다 (신선 4회, 동결 5회)


그리고 7번째 이식이었다.

나는 이 7차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 유산 이후에 첫 이식. 이제 선물이 올 때가 되었다.

- 럭키 세븐(7)이라고 하지 않은가. 7번째 이식은 뭔가 의미가 남다른데?

- 6차 이식 때는 배아가 아들이었으니까, 딸이 찾아올까..?

- 배아 마지막 1개를 넣어서 딱 임신..! 뭔가 엄청 드라마틱하다. 내 인생이 더 드라마틱 해지려나보다.


화유(화학적 유산)는 참을만하였다. 하지만, 계류유산을 겪고 소파술을 하고 몇 달을 보내는 이과정은 정말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인생에 바닥을 한번 찍었다고 생각했다.


처절하고 무겁고 아픈 마음을 많이 느꼈으니, 이제 나도 행복하고 달콤한 엔딩을 맞이할 때가 드디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마지막 5일 배아의 동결이식이 시작되었다.


1d1cecada1c6dc80d104cb8bb934ec33.jpg 출처: 핀터레스트




남은 5일 배양 1개, 동결이식 진행



드디어 동결이식 진행날이었다. 배아는 역시나 예쁜 눈사람 배아였다.

'어서 와라 배아야, 네가 내 인생에 마지막 배아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술을 대기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주치의 선생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오늘 배아 상태 아주 좋아요. 자 임신 갑시다! 올해 연말에 이쁜 아가 낳는 거예요 하하"

"네 선생님!"

밝은 미소로 대답하였고, 나 또한 선생님의 말씀으로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배아의 동결 이식을 진행할 때는 물을 먹은 후 소변을 보지 않은 상태로 이식이 진행된다. 초음파를 더 잘 보기 위해서 소변을 참은 상태의 복부를 간호사분이 꾹 눌렀다.


역시나 괴로웠지만 배아 이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정자세로 있었고, 마음속으로는 기도를 하였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니, 나도 모르게 이식하는 그 짧은 5분여의 순간동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배아 이식은 잘 끝났고, 이제 1차 피검사까지 무한대의 열흘의 기다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c700d086475589a64110c547f76a5f92.jpg 출처: 핀터레스트



열흘의 기다림, 불안한 느낌이 들다.



매번 하는 기다림이지만, 기다림을 하면서도 쉽지 않다.


7번째의 기다림인데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것이 바로 1차 피검까지의 기다림이다.

나의 모든 증상을 임신증상들과 연결시키고, 임신이 안되면 어떡하지의 불안감으로 시험관 카페를 들락날락하는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일단 6일 차까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비드렐'이라는 주사를 이식 당일에 맞았기에, 주사의 영향으로 인해, 이식 후 며칠간은 임신이 아니어도 임테기(임신테스트기)에는 두줄로 나오기에 임신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슬슬 7일 차가 되자, 역시나 몸이 배배 꼬이기 시작하였다.


뭔가 임신이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저번이랑 몸이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불안함에 연속이었다.

7일 차 밤이 되어서 임테기를 해보았다. 두줄이 나왔고, 주사 영향을 받지 않은 임신의 두줄로 생각되어 착상은 잘 되었나 보다 하고 약간의 안도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8일 차, 9일 차 아침 임테기를 해보며, 나는 불안하고 절망적인 마음이 들었다.


이전에 임신을 해보았어서, 대충 이맘때쯤 임테기 진하기로 피검사 수치를 예상해 볼 수 있는데 5차 화유 때랑 비슷한 진하기였다.

임신수치가 안정권인 100을 넘지는 못하겠구나... 불안함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피검사 당일 열흘째 아침 역시 흐릿한 두줄을 보면서 '착상은 되었지만 피검사 수치가 불안하다'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c0f6fb08e68110d7c496d6ef85b8ff4b.jpg 출처: 핀터레스트




1차 피검, 그리고 2차 피검



1차 피검 수치가 아쉬운 수치인 52가 나왔다.


아 이번에도 아닌 거야..?


큰 허탈감이 밀려들어왔다.


남편은 아직 더블링이 중요하니, 이틀 후 2차 피검을 겸허하게 기다려보자고 하였다.

(더블링이란, 2차 피검사의 수치가 1차 피검사보다 2배 정도로 높아지는 것을 뜻하며, 1차 피검사의 수치보다 2차 피검사 때의 더블링 여부가 착상유지에 더욱 중요한 지표라고 보인다)


하지만 11일 차 아침, 이미 나는 마음을 많이 접는 상태에 이르렀다.

임테기를 했을 때 여전히 흐린 두 줄이었다. 착상은 된 건데... 어떤 상황인 거니. 마음이 답답했다.


2차 피검은 20. 화유로 결론이 나왔다.

피검수치가 잘 떨어지는지 확인하려고 일주일 뒤에 3차 피검 날짜를 잡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피검사 수치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괜히 떨어지지 않아서 자궁 외 임신이나, 다른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기면 안 되고 수치가 얼른 떨어져서 생리로 자연 배출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2차 피검까지 나오자 많은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 이번에도 아니구나, 착상은 되었는데 수치가 이렇게 나왔구나.

- 도대체 뭐가 문젠거지?

- 나 그럼 다시 채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가...? 또 처음부터...? 원점인 건가.


복잡스러운 생각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이 생각들은 곧 분노와 빈정거리는 모습들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4e1929d6ba8b5a8d083c8bcd6d6a08b9.jpg 출처: 핀터레스트 (Jair Rosales §)





럭키 세븐(7)은 무슨, 다 부질없네



7번의 이식도 실패로 끝나게 되자,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분노였다.

자조적이고 울분이 섞인 혼잣말이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럭키 세븐(7)은 무슨, 다 부질없네



슬픔이나 우울감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고, 울적한 모습을 한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성적인 모습을 유지했고 흡사 전원 하기 전에 이전 병원에서 시험관 4차까지 모두 착상 자체가 실패했을 때의 태도와 비슷했다.

(흡사 겉으로 보기에는 시험관 안된 거 맞아..?라는 모습처럼 담담해 보이겠지만 마음속에는 다양한 생각의 소용돌이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울해봤자 무슨 의미야, 일단 되는 방법을 생각하자고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소용돌이를 이루다]

- 이제 배아를 다 소진했고... 다시 원점이고 채취를 해야 하네... 시간낭비 같다.

- 다음 채취를 하고 이식은 언제쯤 하지? 난 언제 다시 동결배아를 이식할 수 있는 거지?

- 아이의 띠는 이제 용띠에서 말띠로 가는 건가..? 언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거지?

- 아이를 과연 가지는 게 맞는 걸까?


다양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마지막 끝자락 문득, 슬픈 생각이 덮쳐왔다.

이 생각이 이렇게 진지하게 든 것이 처음이었다.


아이를 과연 가지는 것이 맞는 걸까?
과연 그것이 내 인생에 정답인 건가?

4a08524a705f33539baf6840042f8e43.jpg 출처: 핀터레스트 (Do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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