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음'의 연속

시험관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by 당신의 계절

기나긴 2주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고, pgt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방문하였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저 pgt통과배아 몇 개 나왔나요?"

"네.. 한번 봅시다. 5일 배양은 3개나 잘 나왔는데.. 음 pgt 통과배아는 1개도 없네요"

"네...???"


솔직히 한 개는 나올 줄 알았다.

한두 개 나오려나, 한 개도 안 나오면 어떡하지 이런 마음이 공존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에 언제나 있던 생각은 "그래도 한 개는 나오겠지"였다. 그런데 한 개도 나오지 않았다. pgt통과배아는.


내가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멍하니 있자, 선생님께서 말씀을 이어나갔다.


"pgt통과배아 안 나와서 너무 놀라셨네. 마음 단단히 먹읍시다. 이거 그렇게 쉽게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다음엔 될 거니까, 의연하게 다음에 또 해보면 되지 이런 마음먹어야 해요... 할 수 있어요.

3개 중에 2개는 80% 이상으로 폐기해야 했고요.

한 개가 모자이시즘 배아라고 해서 20% 미만의 유전자 오류가 확인이 돼서요. 개인적으로 이건 하나 얼려두는 거 추천드립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선생님"


모자이시즘 배아..? 새로운 용어가 튀어나아 당황스러웠다. 이번엔 또 뭐지, 5일 배양만 나오면 끝인 줄 알았는데 이젠 뭐 모자이시즘배아? 이건 또 뭔 소리지.

난임병원은 시간이 촉박한 곳이라 선생님께 허송세월로 모든 걸 물을 시간이 없었다.

집에 와서 서둘러 모자이시즘 배아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모자이시즘 배아: 한배아내에서 정상세포와 비정상세포가 모자이크처럼 혼합되어 있는 형태.


모자이크에서 유래된 말로, 이 모자이크처럼 정상과 비정상 비율이 80%로 높으면, 2개의 배아처럼 폐기하지만, 비정상 세포가 20% 정도로 낮다면 이식했을 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기에 냉동하자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물론 모자이크 배아를 이식했다면 임신했을 당시, 양수검사(추후 정밀검사)등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후기들을 보면 모자이시즘 배아를 이식하여도 그 비율이 20% 낮는다면 안정권으로 진입하여, 무리 없이 잘 출산하여 키우고 있는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모자이시즘 배아를 점점 많이 이식하는 추세라고 하였다.


하지만.. 역시 충격이었던 건 pgt통과배아가 한 개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론 시간을 벌었다는 측면에서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하였다.

작년처럼 5일 배양 3개가 나왔다고 좋아하면서 또 유산의 길을 걷기는 싫었다.

미리 유산을 겪게 될 배아를 거르는 작업은 나에게 아프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다시 한 달 텀을 두고 또 난자 채취준비를 하게 되었다.


출처: 핀터레스트



통제할 수 없음의 연속.


끝이 보이지 않으니, 참 답답했다.

꾸준히 진행하고 있던 난임상담에서 이 마음을 상담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담 선생님을 줌으로 뵙게 된 날, 이런 pgt결과를 말씀드리며 답답한 마음을 쏟아냈다.


선생님은 내가 울먹이며 말하는 이야기를 지긋이 들어주시더니,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함을 설명해 주셨다.


"oo님이 지금 하고 있는 시험관의 모든 결과, 임신여부, pgt통과배아의 것들 모두 통제할 수 없는것들이에 요. 이건 oo님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엄청나게 노력을 한다 해도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바꿀 수 없는것들이에 요.


이걸로 인해서 oo님이 일희일비하시면 안 되어요. 결국엔 oo님은 임신이 될 겁니다.


그게 언제일지 모르는 거고요. 다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내 기분을 다스리는 것, 내가 먹을 식단을 다스리는 것, 내 몸을 가꾸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요?"


그렇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난임병원을 다니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난임'이라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임을 매번 깨닫게 된다.


난임을 겪으며 수많은 여성들이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이유가 바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고통'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주사만 열심히 맞고, 시술만 열심히 참아내어서 아이만 얻어낼 수 있다면 100번이고 200번이고 시험관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해도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미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핀터레스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기.


하지만,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결국 손해 보는 것 '나 자신'이었다. 결국 시험관도 아이를 가지는 것도 내 몸이 하는 일인데, 내 몸에 손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은 절대 안 되었다. 힘들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었다.


1) 내 기분은 내가 정한다.


시험관을 하면서, 좌절의 시기가 올 때마다 내가 맘속으로 외치는 말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내 기분은 내가 정한다"였다. 친구들의 임신 소식이나, 출산소식이 울려 퍼져 남과 비교를 하고 한없이 작아지는 마음이 들 때, 그 비교상황을 다 거두어내고 내가 현재 가진 감사한 것들을 되돌아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매 순간 부정적인 감정을 줄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채워나가려는 연습을 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주변사람들의 임신/출산 소식]이라면 통제할 수 있는 상황 [나의 마음을 다스리기,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기]에 집중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이런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은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2) 식단과 운동 그리고 잠. 해오던 루틴들


이전 브런치 글에도 적었듯이, 야채 위주의 식습관과(+영양제) 꾸준한 운동, 그리고 수면 등 내가 꾸준하게 지켜오던 루틴들을 묵묵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단기적으로 극단적으로 당을 아예 제한했다면, 요새는 더 길게 가기 위해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디저트, 고기) 먹어가면서 지켜가려고 노력한다.


먹는 즐거움을 무작정 포기할 수 없기에 지속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과 야채를 곁들여가면서 섭취를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수면을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3) 마음 단련을 꾸준하게.


이러한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나누어 매일 머릿속으로 관리를 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연습을 한다. 난자 채취날, 수술대에서 수면마취에 들어가기 직전 분주한 시기, 나는 내 마음속으로 주문처럼 외치는 말들이 있다.

이 말은, 내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마음속으로 되뇌는 말들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내가 통제할 수 있는것을 바꿀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을 주소서.”

— 세레니티 프레이어 (Serenity Prayer)


그래 가보자, 가볼 수밖에 없지.

이 말을 항상 되뇌며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무지개가 뜨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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