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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Sera Nov 07. 2023

아득하고 아련한

아.......



책은 또 다른 세상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아요. 

그 안에 담긴 당신의 생각에 내 생각을 더합니다. 

책을 읽으며 당신 생각을 더 할게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다시는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거나 직접 만질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자기 몸의 한 부분, 심장의 한 조각이 잘려 나갔다는 비유를 쓴다.
영혼의 일부를 잃어버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라진 팔다리가 한 때 존재했음을 통증이 입증하듯이,
한때 존재했으나 사라져 버린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은
우리 몸의 생생한 통증으로 각인된다.

 - 무정에세이, 부희령, 사월의책, 266쪽


어릴 때부터 나는 이별에 취약했다. 학기를 마치는 종업식이든, 학교를 졸업하는 졸업식이든 마지막날엔 늘 울었다. 눈이 퉁퉁 부은 채 찍힌 사진을 보면 슬펐던 그날이 선명하다.  사촌 오빠들이 방학을 맞아 사나흘 놀러 왔다가 떠나면 반나절은 책상 아래에 들어가 울었다. 오빠들이 갔다는 사실보다 '또 언제 다시 만나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더 속상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연애를 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면 나 혼자 몇 날 며칠을 끝나지 않은 사랑을 부여잡고 슬픔을 쥐어짰다.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과의 이별도 그게 짧은 이별이라고 해도 나는 힘들다. 누군가 죽어서 이제는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쓰리고 따갑다. 살아있기만 한다면 언제든 또 언젠가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아 만날 수 있다.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마음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끝나는 곳에 인연의 끝이 있다. 


"손톱 한 조각이라도 머리카락 한 줌이라도 잘라 둘 걸, 그럼 어머니 보고 싶을 때마다 그거라도 만지면서 마음을 달랬을 텐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훨씬 넘게 지났지만 아빠는 아직도 제삿날마다 슬퍼한다. 아빠의 모습에서 먼 훗 날의 나를 본다. 


그리움의 시작은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마음이 절절해서 끓어 넘쳐도 흘러가 닿을 곳이 없다.  그래서 그리움은 아득하고 아련하다. 그리움은 못내 섧다. 당신을 그리워 하는 내 마음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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