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은 상처의 다른 이름이다

『화담』, 경번, 다시문학, 2024

그 어둠은 먹빛을 하고 죽음의 얼굴을 감추고 있다. 해가 떠도 빛을 밝혀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 『화담』의 일곱 편의 소설에는 막장의 어둠이 짙게 배어 있다. 경번의 첫 소설집에 관한 이야기다. 표제작 「화담」 속 시인의 밥줄이었던 막장은 영태를 사고로 잃은 뒤, 떠나버리고 싶은 곳이 되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이곳을 떠나면 이미 죽은 영태가 막장에서 영원히 갇혀 지내야 할 것만 같아 막장을 떠나지 못했다. 처참한 어둠의 승리처럼 보인다.


「마침내 서서히, 빈 집」의 여자는 균열이 칠 센티미터에서 멈추기를 간절히 바란다. 균열이 멈추면 마치 자신의 불행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 듯하다.


“뚜껑이 열린 손목시계에서 새어 나오는 녹색 불빛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정밀한 균열을 낸다.”


아주 작은 빛이라도 있다면 그 빛이 어둠을 이긴다. 일출의 시각에 해를 본 사람은 안다. 칠흑 같은 어둠도 해가 뜨기 시작하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만다는 것을.

순식간에 세상이 환해진다. 그 환해짐으로 사람들은 위로받는다고 한다. 위로라는 단어는 본디 아픔이나 상처, 절망, 좌절 같은 어둠의 단어들을 전제로 깔고 있다. 상처받지 않은 사람에게 위로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지옥에 있는 사람만이 천국을 갈망하듯 어둠은 빛을 갈망하고, 아픔은 위로를 갈구한다. 아픔과 좌절 즉 균열이 멈추기를 바라지만 그 균열이 있어야 빛이 들어오는, 삶의 아이러니.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진물이 차면 바늘로 구멍을 내어 실을 꿰어둔다. 그러면 그 실을 타고 진물이 흘러나오고 부풀었던 물집은 이내 가라앉는다. 때로는 일부러 균열을 만들어 주기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상처를 차곡차곡 모아서 성을 쌓을 필요는 없다. 다 잊어버릴 필요도 없다. 잊히지 않은 기억들은 낡은 사진첩의 사진처럼 가끔 꺼내 보기도 하며 울어도 괜찮다. 상처에 바람을 쐬어 주는 것도 좋다. 그러면 기꺼이 웃는 날도 오기 마련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가난하고, 버림받고, 실연의 상처와 배신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잃고 부모를 잃는다. 약하고 슬픈 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상처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삶에 굴복하지 않는다.


치유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때로 타자의 공감이나 지지로 위로받을 수 있지만 어떤 고통은 아무도 나를 위로할 수 없다. 나만 위안할 수 있는 슬픔이 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 슬픔은 종종 비밀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경번의 소설은 소금이다. 애써 감춰 두었던,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따갑게 한다. 속을 뒤집어 꺼내 바라보게 만든다. 아픔을 직시하면서 한바탕 울게 만든다. 그러고 나면 깊은 곳에 다시 잘 싸매어 넣어 놓을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고통이 아마도 자기 자신을 통해서 달래진다는 것을 희미하게 깨달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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