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다

『발권이 완료되었습니다』, 권혜경, 오늘산책, 2024

생각만 했는데 가슴이 두근거리는 말이 있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콩닥거릴 때도 있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무조건 설레는 말이다. 여행이 늘 순조롭거나 즐겁지만은 않은데 왜 사람들은 기를 쓰고 떠나는 걸까? 어차피 다시 돌아와야 하고 또 집에 올 때는 녹초가 되곤 하는데……. 하지만 여행은 소망과 동의어이다. 맨 처음 여행한 곳을 죽기 전에 다시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이는 그 지역의 이름을 비밀번호로 만들어 매일 상기한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기 위해 매월 얼마씩의 돈을 공동으로 모으기도 한다. ‘에펠탑 아래 잔디밭에서 바게트샌드위치 먹기’ 같은 항목을 버킷리스트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그러고 보면 여행처럼 과거부터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일도 드물다. 비행기 표 발권과 동시에, 아니 장소를 물색할 때부터 어디 가서, 무얼 먹을지 계획을 세우면서 이미 마음은 미래의 그곳에 가 있다.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오고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서면 여행은 비로소 현재가 된다.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접어두고 감탄사를 남발하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지금 여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외치면서 말이다. 여정을 마치고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아직 여행지에서 돌아오지 않은 마음이 나를 다시 붕 뜨게 만든다. 어제, 엊그제의 추억을 곱씹으며 다음을 기약한다. 여행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품고 흘러간다.


『발권이 완료되었습니다』를 쓴 권혜경 작가는 여행이 좋아서 여행사를 차리고, 여행사를 운영하니 남들보다 여행할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은혼식을 기념하여 남편과 유럽으로 맥주 여행을 떠나고, 도시락만을 테마로 일본 벤토 여행을 떠난다. 성덕의 좋은 예지만 누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꼭 일본이나 유럽이 아니면 어때? 유명 관광지 관람이나 거창한 일주가 아니면 뭐 어때? 시원한 맥주를 마시러, 도시락을 먹으러 옆 동네로 가는 것도 여행이 된다고 생각하면 소박한 삶도 즐거운 여행처럼 살 수 있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떠나도 여행지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매번 그렇지는 않겠지만, 마치 여행을 도와주는 신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결국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해결되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멋진 외관만 보고 예약한 게스트하우스가 막상 도착해보니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 몇 시간을 찾아 헤매어도 보이지 않을 때, 여권을 소매치기 당해 며칠 내로 비자와 여권을 동시에 재발급받아야 할 때, 그녀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로부터 받은 환대는 일시적인 안도와 감사에서 끝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한 번쯤은 나처럼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을 도움으로써 그 아름다운 빚을 갚는 날이 오겠지.”


감심感心함을 품은 채 일상을 살다가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 누군가에게 진 빚이 다시 빛이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로 벋어간다. 저자는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엮으면서,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맺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고백한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베푸는 호의가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저 작은 친절을 나누는 것만으로 든든한 마음이 된다. 고마운 마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고 돌다가 어느 날 나에게 온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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