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신형철 지음, 난다, 2022
애도(哀悼)는 한자로 哀(슬플 애)와 悼(슬퍼할 도)가 만난 글자로 ‘슬픈 것을 슬퍼하다’는 뜻이다. 두 글자 모두 슬픔을 담고 있으니 ‘애도’라는 말은 슬픔 그 자체이다. 哀(슬플 애)자는 죽음을 뜻하는 喪(잃을 상)자와 닮았다. 그래서 애도는 다른 종류의 슬픔보다 깊으며,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슬퍼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슬픔은 어떤 모양일까? 죽음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걸까? 아이들이 물에 묻히고, 발에 밟혀서 숨을 놓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숨을 잃었다. 사고였다고, 인재였다고, 참사였다고 말하는 그런 이유들이 중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 부질없는 사람도 있다. 남은 가족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원인이나 경위 따위는 말 그대로 ‘따위’일 뿐이다.
신형철은 그의 저서 『인생의 역사』에 죽음에 대해 이렇게 적어두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애도가 쉽지 않았다. 희생자의 가족들이 겪고 있을, 도저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상실감을 애도라는 두 글자로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그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랑하는 이로 인해 빛나던 그들의 한 세상이 꺼졌기 때문이다.
애도를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째서 기간을 두고, 방법을 두고 애도를 강요하는가? 너는 자식을 잃어봤는가? 끊어지면 내 숨도 같이 끊어질 것 같은 그런 관계를 너는 가졌는가? 묻고 싶다. 정확하게 똑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종류의 감정들이 있다. 아니다. 세상의 모든 감정은 결코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본 사람만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애도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나는 말할 수 있지만 도저히 말이 목을 넘어오지 못한다.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눈물처럼 흐를 뿐이다.
슬플 애(哀)와 글자는 다르지만 똑같은 소리를 내는 사랑 애(愛)를 떠올려본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겠지만 또 다른 사랑이 그 슬픔을 연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그래주기를 바라는 애련한 바람을 품어본다. 아득히 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