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말들』, 나연만, 유유, 2024
살아 움직인다. 한 번 밖으로 나오면 휘발되어 금세 사라져버린다. 실체가 없어서 잡을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높고 낮음이 있고, 길고 짧음이 있다. 때로 바람에 날려 뒤꽁무니가 잘리기도 한다. 사람에 의해 소리가 나는데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꼴이 다르다. 그것은 바로 말이다. 말은 사람과 함께 살아온 오래된 삶의 도구이다. 글이 없을 때도 말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수많은 것들을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각 지역의 고유한 방언들은 아직 분명한 ‘말 그릇’을 지키고 있으며, 말 그릇에 꼭 맞는 마음을 담은 말들이 있다.『충청의 말들』은 충청도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나연만이 책, 영화, 티브이 등에 쓰인 100개의 충청도 사투리 문장을 골라 충청도식 단상을 덧붙이며, 그 말에 얽힌 자신의 기억과 일상, 사회에 대한 생각을 담아낸 책이다.
‘충청도는 선비의 고장’이라는 말은 칭찬일 테지만, 정치적 성향의 특색이 없는 충청도를 멍청도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그런 여러 가지 특성이 말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다. 충청도 말은 굉장히 여유 있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듣다보면 대화의 맥락에서는 조금 벗어난 듯하지만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매력이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은근슬쩍 내뱉는, 속을 알 수 없는 언어적인 표현에 묘하게 빠져든다.
나연만 저자는 개그맨 최양락 씨의 말을 인용하며, 충청도 말의 매력은 어감이 부드럽고, 직유적이기보다는 은유적인데 그러면서도 핵심을 명쾌히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단순히 충청 방언을 소개하고 뜻풀이하는 것을 넘어, 충청의 말을 하나의 씨앗으로 삼아 충청인의 매력을 은근하게 피력한다. 역시! 충청인답다. 충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이! 시방 읽어봤구먼유. 이 책 참말로 괜찮여. 재미있게 잘 썼구먼유”라고 말하면 나연만 저자가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괜찮유유. 깨지니께 그릇이지, 튀어 오르면 공이지유.”
사람들은 ‘충청도 사투리는 돌려 말하기’라고 하는데, 그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괜찮어유”라고 말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아끼는 그릇이 깨졌는데 괜찮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릇을 깨고 혹시라도 미안해할지도 모르는 상대를 위해 짐짓 괜찮은 척 돌려 말하는 것이다. 할 말, 못 할 말, 해서는 안 될 말까지도 아무 거리낌 없이 ‘씨부렁거리는’ 세상에 속사정은 감추고 먼 산을 보며 “괜찮어유”라고 말하는 충청인들이 얼마나 ‘괜찮은’가! 찐 양반이 맞다. 느긋하고도 긍정적인『충청의 말들』에는 능청스럽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잔한, 충청인의 진짜 속마음이 빼곡하다.
‘사투리’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가 과거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사투리는 촌스럽고, 서울말은 세련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80년대의 서울말을 들어보면 어딘가 모르게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심지어 서울말이 우스꽝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규범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MZ세대의 영향일까? 각자의 개성이 다르듯 언어 역시 문화적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의 표지가 아닌 다양한 개성의 한 표현일 뿐이다. 표준어의 뜻이 ‘기준이 되는 말’을 넘어서 ‘서로 다른 언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의사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공통의 언어’라는 뜻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포부나 해석이 없이도 뜻이 통한다면, 다양한 소리의 말들이 주는 재미를 만끽하는 것도 괜찮다.
형태가 없는 말과 마음은 쉬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마음을 담아 말하는 일은 어렵다.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기란 더 어렵다. 그럴 때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냐고, 말해야 알지, 어떻게 아느냐고 서로 싸우지 말고 충청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에둘러 담아보자. 넉넉한 충청의 말에는 그 어떤 말을 담아도 꽤 다정하게 들린다. 『어린 왕자』의 한 구절도 충청의 말이라면 얼마나 구수한지. 싸움을 유지하기가 힘들당께?
“이! 넌 이쁘자녀. 자세히 안 봐도 이쁘니께.”
“맘이루 보야 혀. 중한 건 눈에 뵈덜 않거든.”
이 : ‘알겠다’, ‘그렇다’의 뜻이 담긴 충청의 말로 주로 말의 앞에 추임새로 쓰거나, 어떤 질문에 긍정의 뜻으로 대답할 때 쓰이며, 말할 때는‘이~’ 또는 ‘이~이~’라고 발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