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나에게 말하는 것들』, 최은창, 노르웨이숲, 2024
춤을 잘 추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음악을 들을 때 딱 하나의 악기 소리만 들을 수 있으면 된다. '쿵짝 쿵쿵짝' 하는 드럼 소리를 알아차리는 거다. 드럼 소리에 내 발자국을 맞춘다고 생각하고 따라가다 보면 어떤 음악이든지 춤을 출 수 있다. 어느 소리가 드럼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면 지금 당장 BTS의 Butter를 틀어서 들어보자. 그럼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드럼은 다른 악기들의 박자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듣는 사람에게 리듬을 느끼게 해준다.
드럼이 모든 악기의 기본이라고 여겼던 내 생각을 단번에 ‘편견’으로 만들어버린 책이 있다. 바로 재즈 베이시스트 최은창의 『재즈가 나에게 말하는 것들』이다. 재즈라는 장르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또 전혀 낯설지 않은, 익숙한 기분과 낯선 기분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그런 면에서 와인과 비슷하다. 전문적으로 알지 못하면서 와인이나 재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주춤하게 만들지만, 몸을 맡기고 한껏 흐느적거리기 좋은 요소다.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점도 같다.
재즈는 20세기 초,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기원했다. 원래 무역항이었던 뉴올리언스는 다양한 인종이 혼재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 항구로 지정됨에 따라 군악대와 브라스 밴드들이 드나들면서 재즈 음악이 활성화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있었다. 재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럽계 미국인 사이에서, 전통음악과 대중음악 사이에서 발전한, 역사와 인종을 아우르는 음악의 한 장르다. 『재즈가 나에게 말하는 것들』은 재즈의 기초나 지식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재즈는 무엇이다’라는 확고한 정의나 이론보다는 ‘재즈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자의 대답 즉 재즈가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지를 들어보라고 당부한다.
최은창 저자는 재즈 베이스를 연주하는 베이시스트이다. 재즈 연주에서 피아노나 드럼, 트럼펫 소리는 익숙하고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베이스는 여간해서 잘 들리지 않는다. 숨 가쁘게 몰아치는 솔로처럼 격정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끝없이 단조로운 4분음표일지라도, 그 4분음표를 반복해서 쌓아가는 베이스 주자의 삶도 의미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문장은 누구나 주인공을 꿈꾸지만 항상 빛나기만 할 수는 없는 우리의 삶도 그 자체로 제법 괜찮다고, 보통의 사람들을 격려한다.
“지금 나는 내 악기에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연주의 종착점이 아니고, 내가 만든 소리를 통해 드러머를, 솔로 주자를 연주하는 것이 재즈라고 믿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한한 반복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것, 무대의 다른 연주자들이 그 물결을 타고 어디론가 탐험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 베이시스트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한다. 물결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연주를 듣는 이들도 그 물결을 타고 모험을 시작할 수 있다면, 베이스야말로 모든 악기 중에 기본이며 으뜸이 아닐까.
똑같은 악보를 보고 있지만 어떤 악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곡 해석이 달라지고, 같은 악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연주자에 따라 연주는 달라진다. 예술이 그렇고 삶이 그렇다. 고유한 방식으로 저마다의 삶의 임무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매일매일 반복하며 행하는 일과 인생 사이에서 자기만의 임무를 찾아낸 사람을 장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만든 물결 위에서 다른 이들도 모두 각자의 삶을 연주해 나가기를 원하는 그의 인생은 재즈와 닮았다. 아니, 베이스와 닮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오늘도 재즈 베이스의 4분음표로 자분자분 걸어가고 있을 그의 뒷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