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녹는』, 성혜령, 이서수, 전하영, 다람출판사, 2025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WWW의 포로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문과 뉴스를 포함해 학교에서 오는 가정통신문,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는 일, 친구와 약속을 잡고 약속 장소의 위치를 찾아보는 일, 기차표를 끊고, 심지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일까지도.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 안의 세상 즉, ‘거미집 모양의 망’이라는 WWW 안에서 산다.
요즘 유행하는 SNS 중에 Threads라는 채널이 있는데, Threads의 특징 중 하나는 서로 경어체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 규칙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반말로 소통한다. 그 안의 세계는 만남도 헤어짐도 쉽다. 어제까지 친구였다가 오늘 맘에 들지 않으면 차단 버튼 하나로 친구 관계 끊을 수 있고, 계정 삭제 버튼으로 자신의 SNS 공간을 말끔히 지워버릴 수도 있다. 관계는 한없이 가벼워졌다.
‘손절’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게 된 것도 SNS의 유행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본다. 손절이라는 말은 원래 주식 투자에서 쓰이는 말 중 ‘손해를 보더라도 적당한 시점에서 매도한다’는 뜻을 가진 용어, 손절매(損切賣)에서 유래되었다. ‘손해를 보고 끊어낸다’는 본래 의미보다 단순히 ‘손을 떼다’는 뜻으로 쓰는 경우가 더 많아지게 되었으며, 앞의 ‘손’ 자를 한자 ‘덜 손(損)’이 아닌 순우리말 ‘손’과의 결합으로 ‘손을 끊는다’ 즉 ‘관계를 끊는다’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손을 씻었다’고 말하는 것은 꽤 결단이 필요한 일 같아 보였는데, 오늘날의 손절은 무척 쉽다. 클릭 한 번이면 가능하다.
소설집『봄이 오면 녹는』은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고민인 ‘손절’을 주제로 쓴 젊은 작가들의 앤솔로지다. 성혜령, 이서수, 전하영, 이렇게 세 명의 젊은 소설가가 양자 얽힘(Entanglement)의 과학적 개념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의 삶이 개별적이면서도 우주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구현한 책이다.
성혜령의「나방파리」, 이서수의「언 강 위의 우리」, 전하영의「시간여행자―처음 한 여행과 다르게 여행하는 것」. 이 세 편의 소설에 정독도서관이 나오고, 도서관 벤치에 앉아 양산을 쓴 채로 도시락을 먹는 여자가 다른 시선으로 묘사된다. 담배를 끊었지만 오늘만 말보로를 핀다는 남자와 말보로 피우는 남자에게서 처음 담배를 배웠다는 여자가 각각의 소설에 나온다. 기묘한 이발소에서 죽은 아이의 영혼을 만나는 사람들과 이발소를 뛰쳐나오는 한 여자가 있고, 다른 소설에는 그 여자를 바라보는 이가 등장한다. 그 인물들이 동일 인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끈이 거미줄처럼 존재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서로 느슨하게 얽혀있다. 손절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손절은 당하고 싶지 않은 끈끈한 몸부림이 엉켜있다. 단절되고 싶지 않은 외로운 영혼들이 엉겨있다. 우리를 얽어둔다.
각자의 문체로 독립적인 소설을 쓰면서도 서로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 각자의 삶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인정하거나 깨닫거나 발견하는 등의 자각이 없어도 분명 연결되어 있다.
당신과 나는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각자의 삶에서 만들어낸 파장은 끊임없이 퍼지고, 미래의 어느 날 그 파장이 마주 닿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과거의 언젠가 이미 만났을 수도 있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손절은 쉽지만 절연은 어렵다. 그러므로 인생은 상호주관적이며, 상호보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