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당일치기를? 또?
"여행은 인생에 있어 분명한 태도를 가지게 하지. 무작정 쉬러 떠나는 사람도, 지금이 불안해서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사람이 먼 길을 떠나는 건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겠다는 작은 의지와 연결되어 있어. 일상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저기 어느 한켠에 있을 거라고 믿거든." -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달 출판사.
나는 올레 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자주 간다. 나처럼 올레길을 좋아하고, 자주 가는 이들 중에는 올레길을 완주한 사람들은 많다. 그들은 숙박을 하면서 한 번에 몇 코스씩 걷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늘 당일치기로 올레길을 다녀온다. 당일 치기는 쉽지 않다. 제주를 하루만에 다녀온 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떠난다.
출발점에 설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단 한 번도 설레지 않는 적이 없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 제주행 새벽 비행기에 몸을 싣고 올레 걷기 여행을 떠난다. 비가 오는 날도, 해가 쨍쨍한 날도,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도 걷고 또 걷는다. 길을 걷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찾아서 나는 그렇게 자꾸만 떠나는 것일까? 올레길 위에 나를 세운 것은 무엇일까.
어떤 행복은 비록 하루치이지만 거기 가야만 얻을 수 있다.
올레길에서만 찾을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바로 거기에.
올레길은 행복이다. 2020년 여름에 올레 1코스를 걷기 시작해서 지난 5월 18일 수요일에는 애월읍 고내리에서 광령으로 이어지는 16코스를 걸었다.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열다섯 번 다녀왔다. 내가 봐도 정말 대단하다. 제주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고 하면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있다.
또?
남들 눈에는 신기해 보일 것이다.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부러울 수도 있다. 가끔은 미친 거 아니냐는 말도 듣는다.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또 가?" "또 당일치기야?"
그 '또'에 어떤 마음을 숨기고 말하는지 알기에 애써 못 들은 척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또?'가 아니고 '왜?'이다. 첫 비행기를 타고 가서 부지런히 12~3km 정도의 길을 걸은 후, 바다 한 번 보고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마지막 비행기로 돌아오는 여정은 힘들다 못해 혓바늘이 생길 정도로 고되다.
그럼 왜?
그럼에도 자꾸 떠나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살고 싶어서'이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빨래 바구니의 빨래들이 '엄마, 엄마, 나 좀 빨아서 말려줘'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설거지통 그릇들도 말한다. '엄마나 좀 씻겨줘.' 엄마로서, 아내로서, 주부로서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루쯤은 내려놓고 싶다. 온전히 나로 살고 싶다. 들에서 만난 한송이 꽃처럼 살고 싶다. 길 위에서는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올레 여행은 얼음물이다.
뜨거운 가슴속을 한 순간 차갑게 만들어 버린다. 얼음은 녹아 없어져서 이내 다시 더워지겠지만 한동안 입안이 얼얼하게 시원하다. 일상에 지쳐서 목이 마를 때, 목이 말라서 시원한 얼음물이 간절할 때 나는 길을 떠난다. 그 길의 끝은 언제나 집을 향해 있고, 밤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와서 내 방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감하겠지만, 내 가슴은 한동안 시원하다. 길을 걸으며 눈에 바다를 담고 왔기에, 머리카락에 바람을 실어 왔기에. 그래서 나는 또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