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꽃이 되고 싶어요

길에서 만난 꽃


22년 5월 18일.

봄을 건너 조금씩 여름으로 변해가는 5월. 열두 번 째 올레여행을 떠났다. 16코스는 고내포구에서 광령1리사무소까지 15.4km의 길인데, 그날은 광령1리에서 출발해 고내포구까지 역방향으로 걸었다.


애월읍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어서 고내리, 광령리는 친숙한 동네였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 너무 생소했다. 내가 알던 길이 아니었다. 상귀리에 살던 내가 서귀포 중문을 가려면 꼭 광령리를 지나서 가야 했다. 그건 차로 갈 때의 이야기이고 걸어보니, 걷는 길은 전혀 다른 길이었다.


올레라는 말은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 비슷한 길을 뜻하는 제주 지방의 방언이다. 그 이름답게 올레는 차가 다니는 길보다 골목 안으로 들어갈 때 더 매력적이다. 16코스는 더욱 그랬다. 다른 올레와는 다르게 동네 깊숙한 곳까지 나를 이끌었다. 광령리는 유난히 꽃이 많았다. 5월이라 그런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꽃은 어느 계절에나 피니까. 아마 동네사람들의 심성이 꽃처럼 고와서 그런 것 아닐까?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싹이 나기를, 꽃을 피기를 기다리는 마음들을 눈치챘다.


걷기를 여러 번 중단해야만 했다. 꽃을 만나면 눈인사를 해야 했고, 어여쁜 꽃들은 잊힐까 휴대폰에 담느라, 꽃들무리에 섞여 내 몸도 잠시 기대보느라 발걸음이 느려졌다. 걷는 일은 뒷전인 듯 한참을 꽃들을 바라보았다.


꽃에도 얼굴이 있다. 나를 바라보고 피어있는 방향이 꽃의 얼굴이다. 꽃도 사람처럼 얼굴이 다 다르다. 소리 내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꽃은 자기가 가진 꽃말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이가 들면 휴대전화 사진첩에 꽃 사진이 늘어난다는데, 티 안 내고 싶지만 나도 나이 들어가나보다. 부쩍 꽃 사진이 늘었다.

올레길.16코스에서 만난아이들.

올레길을 걷다가 예쁜 꽃이 있으면 일단 찍고, 이름이 궁금하면 네이버에게 물어본다. 신통방통하게도 웬만한 것들은 다 알려준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안 예쁜 꽃이 없다. 살며시 소리 내어 이름을 불러본다. 분홍 낮달맞이, 초롱꽃 체리벨. 체리벨이라니 이름도 얼굴만큼 어여쁘다. 입속에서 'ㄹ'발음이 사랑스럽게 굴러다닌다.




꽃은 스위치이다. 바라보는 이의 얼굴에 불을 켜준다. 꽃을 보면 누구나 환해지기 때문이다. 잔잔한 미소를 띠게 하고, 함박웃음이 퍼지게도 한다. 나도 꽃이 되고 싶다. 당신이 나를 보고 환해졌으면 좋겠다. 작은 미소여도 괜찮다. 몰래 슬며시 혼자 웃어도 괜찮다. 나에게 들키지 않아도 괜찮다. 눈빛에서 당신의 미소를 읽어내는 건 내 몫이다. 그저 당신이 나로 인해 조금 환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의 초롱꽃 체리벨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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