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후추 향,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맡을 수는 없는
북부 론(Northern Rhône)의 시라(Syrah) 와인에서 느껴지는, 코를 간질이는 듯한 검은 후추(black pepper)의 향신료 같은 향. 이 매력적인 향의 정체가 바로 로툰돈(Rotundone)입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의 친구가 이 향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그를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2008년 호주 와인 연구소(AWRI)의 연구를 통해 처음 규명된 이 흥미로운 현상은, 인구의 약 20~25%가 특정 후각 수용체 유전자의 차이로 인해 로툰돈 향을 전혀 맡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로툰돈은 누군가에겐 와인의 핵심 개성이지만, 누군가에겐 말 그대로 '맡을 수 없는 향기'이기도 한, 매우 흥미로운 분자입니다.
로툰돈(C₁₅H₂₂O)은 세스퀴테르펜(sesquiterpene) 계열의 화합물로,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명확하고 순수한 흑후추(black pepper) 향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 향은 와인 내 감지 역치(Odor Threshold)가 약 16 ng/L로 극도로 낮아, 아주 적은 양으로도 와인의 캐릭터 전체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로툰돈처럼 감지 역치가 극도로 낮은 핵심 향기 화합물을 따로 '고영향 화합물(High-Impact Compound)'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친숙한 스파이스 향은 실제 후추(Piper nigrum)의 핵심 성분과 동일하며, 로즈마리(Rosemary), 타임(Thyme), 오레가노(Oregano), 바질(Basil) 같은 지중해 허브에서도 발견됩니다.
로툰돈의 생성 경로는 우리가 이전에 다뤘던 모노터펜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 화합물은 알파-구아이엔(α-guaiene)이라는 전구체가 산화(oxidation)되면서 만들어집니다. 이 향은 포도가 익어가는 시기(veraison) 이후부터 포도 껍질(skin)에 주로 축적되는데, 흥미롭게도 포도알뿐만 아니라 잎과 줄기에서도 합성됩니다. 이 때문에 수확 시 포도 외의 부속물(MOG, Material-Other-Than-Grapes)이 얼마나 포함되는지가 와인의 최종 후추향 강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로툰돈은 서늘한 재배 조건에서 그 함량이 증가하는 반면, 과도한 햇볕 노출은 오히려 농도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로툰돈은 서늘한 기후에서 자란 특정 품종에서 그 존재감이 두드러집니다. 가장 대표적인 품종은 단연 시라(Syrah/Shiraz)입니다. 특히, 서늘한 기후의 프랑스 북부 론이나 호주 빅토리아 지역의 시라에서 강렬한 흑후추 향이 나타나는 반면, 따뜻한 호주 바로사 밸리의 쉬라즈에서는 후추향 대신 잘 익은 과일향이 주를 이룹니다. 시라 외에도, 오스트리아의 화이트 품종인 그뤼너 펠트리너(Grüner Veltliner)가 후추향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며, 프랑스 남부의 무르베드르(Mourvèdre), 그르나슈(Grenache), 미국의 두리프(Durif), 오스트리아의 츠바이겔트(Zweigelt), 이탈리아의 베스폴리나(Vespolina) 등에서도 로툰돈의 캐릭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주요 연관 아로마:
스파이스(Spice): 흑후추(Black Pepper), 백후추(White Pepper)
허브(Herbal): 로즈마리(Rosemary), 타임(Thyme), 오레가노(Oregano), 바질(Basil), 마조람(Marjo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