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된 화이트 와인의 캄포, 꽃, 나무 향
잘 숙성된 리슬링(Riesling) 와인에서는 단순한 과일이나 석유 향을 넘어, 시원하면서도 복합적인 뉘앙스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오래된 나무 상자에서 나는 듯한 향, 은은한 꽃, 그리고 화한 허브 향이 어우러진 듯한 이 섬세한 향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비티스피란(Vitispirane)입니다. 비티스피란은 TDN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대표적인 숙성 화합물입니다.
비티스피란은 카로티노이드(carotenoid)가 분해되어 만들어지는 C13 노르이소프레노이드(norisoprenoid) 계열의 화합물입니다. 이 화합물의 향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성이 특징이며, 주로 캄포(camphor-like, 장뇌), 꽃(floral), 나무(woody), 스파이시(spicy) 노트로 묘사됩니다. 또한 TDN과 함께 숙성된 화이트 와인의 석유(petrol) 뉘앙스에도 일부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지 역치(Odor Threshold)는 1~2 ng/L로 극도로 낮아, 아주 적은 양으로도 와인의 복합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고영향 화합물(High-Impact Compound)'입니다.
비티스피란의 잠재력은 포도가 익어가는 과정에서 카로티노이드가 분해되며 포도알 속에 축적됩니다. 와인 속에서는 향을 바로 내는 자유형(free form)과, 향이 없는 비활성 배당체(glycosidically bound)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배당체 형태로 잠재되어 있던 비티스피란은 병 숙성 과정에서 와인의 산(acid)에 의해 서서히 가수분해되어 자유형으로 방출됩니다. 이는 비티스피란이 와인의 장기적인 향기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티스피란은 주로 숙성된 화이트 와인, 특히 리슬링(Riesling)과 같은 서늘한 기후 품종에서 그 특징이 잘 나타납니다. 이탈리아의 토착 품종인 그릴로(Grillo) 와인에서도 숙성된 샘플에서 특히 중요한 향기 성분으로 검출된 바 있습니다. 비티스피란은 단독으로 주연 역할을 하기보다는, TDN, β-다마세논 등 다른 노르이소프레노이드 화합물들과 어우러져 숙성된 와인만이 가질 수 있는 깊고 다층적인 부케를 완성하는 데 기여합니다.
주요 연관 아로마:
허브 & 스파이스(Herbal & Spice): 캄포/장뇌(Camphor-like), 스파이시(Spicy)
꽃(Floral)
나무(Woody)
기타(Other): 석유(Petrol, TDN과 함께 숙성 부케에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