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솔티 May 05. 2023

붕어빵 안팔아요

겨울마다 “붕어빵은 겨울 제철 음식이지요” 라는 농담을 했다. 

사람들은 억지로 웃어주거나 혹은 아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더럽게 재미없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된 기분이었다. 


12월 12일 생일 이틀 전, 성수동, 낯선 남자를 만났다. 누구든 좋으니 생일엔 타인과 같이 있고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틀 안에 사람을 꼬셔야했다. 사랑을 구걸 하러간 셈이었다.그 해, 나의 애정사는 불우했다. 1년 조금 넘게 만나고 헤어진 전남자친구는 나와 헤어지자 마자 내가 친하게 지냈던 동생과 일주일 만에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고등학생 세명에게 “스타킹 입고 찍은 사진 좀 보내 봐” 라고 보낸 추잡한 메시지가 들통나 인스타그램 섹스 스캔들이 터졌다. 오물을 끼얹은 기분을 넘어서 오물을 호스로 꽂아 마신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자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키스만 하면 다들 도망을 갔다. 

키스 이상의 스킨 쉽, 혹은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가 도망을 갔다. 

가지가지 하며 불우했다. 


“붕어빵은 겨울에 꼭 먹어줘야 하잖아요 제철음식이니까”

“그렇지요” 그 애가 그렇게 대답하기 전까지만 그랬다. 


나는 그 애의 “그렇지요” 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얼음을 밟고 나자빠졌다. 성수동 한복판에서 처음 만난 남자 앞에서 엉덩이에 흙칠한 여자, 처음 만난 여자의 엉덩이를 장갑까지 벗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툭 털어주는 남자, 그러고 있는 와중에 길 물어 보는 외국인. 환장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그것보다 나를 웃게 하는 일은 없었다. 생일, 그 애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나체로 앉아 기타를 쳐줬다. 내가 들으면 번번히 운다는 노래를 이틀 동안 연습해왔다. 앞으로 절대 울지 말라며 3초에 한 번씩 고의적으로 삑사리를 내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크리스마스, 그 애는 여름에 배를 타고 돗토리현에 가자고 했다. 그 애의 짧은 머리가 바닷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바로 떠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우리는 다음 날 새벽 6시, 동해로 떠났다. 돗토리현은 못갔지만 배를 탔다. 일출과 일몰을 보고, 붕어빵과 잉어빵의 차이점도 검색하고, 그는 삑사리 없는 버젼으로 노래를 다시 불러주고, 나도 나체로 그를 위해 노래했다. 더이상 불우하지 않을 것 같았다. 5마리 만 원에 붕어빵을 팔아도 장사가 잘 될 것 같았다. 그 애를 붕어빵 트럭 보다 더 자주 만난 한 달 간 나는 붕어빵에 들어간 팥앙금 보다 더 깊은 곳에 그 애를 품었다. 내게는 온통 그 애야 라는 설명은 부족했다. 그 애가 없는 나는 그냥 밀가루 반죽 덩어리었다. 


그리고 동해에서 돌아온 뒤 그 애는 이틀 동안 연락이 되지않았다. 그러다 전화가 왔다. 그 애였다. 보스턴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이틀 동안 연락이 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 하고싶다고 했다. “갑작스러웠어, 너무 갑작스러워서 너한테 말할 틈도 없었어!” 말했다. 그 애는 퍽 난감 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근데 그거 당연히 뻥치는 거지! 그런 게 어딨어! 나는 그 애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도 그냥 출국 하기 전 만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생일에 누구든 같이 있고싶었던 것처럼. 그 애도. 그러나 나는 그 애의 난감함이 속상했다. (원래 붕어빵에서 밀가루 역할인 나 같은 것들은 팥앙금이 얼마나 나쁘든지 간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 애의 사과가 끝나기도 전에 그를 용서했다. 그가 내게 난감한 척 미안한 척 말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괜찮아 어쩔 수 없지” 라고 대답했다. 그 애는 내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괜찮지 않으면, 네가 뭐 어쩔건데. 그 애는 “노래 불러줄까?” 라고 물었다. 됐다고 말했다. 대신 보스턴에 놀러가면 만나주겠냐고 물었다. 그는 배를 타러 가자고 할 때처럼 “내일 당장도 좋아” 라고 말했다.


마음은 노릇하게 익었는데 뒤집어 주는 이가 없어진 겨울. 

어디로 가도, 아무리 기다려도 붕어빵을 팔지 않는 겨울이었다.


*

붕어빵 트럭이 다 사라진 날씨가 되고 그 애를 만나러 보스턴에 갔다. 

“나 보스턴에 왔어. 일주일 동안 있을 계획이야. 한번 볼래?” 라고 연락하자 그 애는 바쁘다고 대답했다. 

그 애가 좋다고 말 한 보스턴의 재즈바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그를 아주 오래 기다렸다. 

그 애는 오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나 너랑 사귀지도 않는데 왜 차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