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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Feb 18. 2021

영화관

글의궤도 4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극장이 생각난다.

그 당시 중계동에 살던 우리 가족은 '건영옴니 시네마' 라는 극장을 이용했는데,

동네 작은 백화점 지하에 있던 극장이었다. 사실 백화점이라기 보다는 대형 마트의 느낌이 강했고,

뭐 백화점 특유의 고급스러움이나, 위화감 같은 분위기는 없는 그냥 동네 아주머니들의 모임 장소 정도였겠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 우리 가족은 경제적 형편이 꽤나 어려웠는데,

그 와중에도 나에게 극장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한 두푼 살림을 아껴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왔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우리 엄마가 좀 귀엽다.


내가 극장에서 처음으로 봤던 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인어공주' 였다.

동네에 하나뿐인 영화관은 아이를 데려온 가족들이 정말 많아 인산인해였던 것이 기억나고,

줄을 서서 들어가는 극장의 어느 한 켠 플라스틱 통에 식용색소를 넣은 색색이 팝콘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먹고 싶다고 떼는 쓰는 나에게 주머니 사정을 운운할 수 없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타이르던 엄마가 생각난다.


그때의 기억으로 우리 엄마는 아직도 영화관을 가면 가장 비싼 팝콘 패키지를 쥐어준다.

(성인이 된 이후로 나는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되고, 아직 너무 어린 5살 남짓의 나는,

내 생각보다 빠른 한글자막의 속도에 결국 빼앵 하고 울었는데

(아마 한글자막과 한글더빙이 영화표 가격 차이가 있었을 거다. 돈이 없는 엄마는 한글자막을 예매했을 테고.)

엄마가 나를 달래며 한시간 반짓한 러닝타임 내내 내 귀에다 자막을 읽어주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이미 한글자막을 다 읽고 배우의 표정까지 읽어낼 수 있는 성인이 되었지만,

그 때의 추억으로 나는 아직도 극장을 가는 걸 너무 좋아한다.


나는 같은 피가 섞인 가족이라 할지라도 각각의 인격체이기에 결국은 완벽한 타인이라 생각하는데,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인격체가 또 존재할까. 가끔 나는 일하다 감당하기 힘든 사건들이 일어날 때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 깊은 위안을 받곤 한다.


아직도 가끔 집에 놀러가면 나와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워 창문으로 내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보는 엄마,

자주 찾아가야 하는데 맘처럼 쉬운 일이 아닌지라 마음만은 효녀라는 건 알아줬으면.  


[관객의취향_취향의모임_글의궤도_꿀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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