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며 반짝거리는 소중한 순간들
관객의취향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20~30대 여성이다.
전에는 연령층이 다양한 편이었는데, 책방을 옮기고나서는 40대 이상의 손님과 10대 손님이 많이 줄었다.
아마도 책방의 위치 때문이라기 보다는 코로나의 영향이지 싶다.
어쨌든 주로 오는 손님의 연령층이 아니면 자연스럽게 눈에 띈다.
어쩐지 키는 크지만 옷차림이 굉장히 young해보이는 남자 손님이 책방이 들어왔다.
순간, 문제집을 사러 왔는데 잘 못 들어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관취로 걸려오는 전화문의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문제집을 찾는 고등학생들의 문의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지도로 주변 서점을 검색하면 관객의취향이 나와 전화를 하는 것 같다.)
10대 손님은 보통 주말에 엄마랑 함께 서점에 온 여학생들이 많다. 남학생이 혼자서 책방에 오는 일은 정말 손에 꼽는다. 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조용히 손님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런데 손님은 조금 쭈뼜거리더니 책장 앞에 서서 자세히 책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이었다. 아 정말 책을 사러 온 모양이군! 나는 문제집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려던 마음을 접고 나의 업무에 몰두했다.
손님은 한참이나 책을 살피다가 <나의 겨울 방학 이야기>라는 작가들의 열여덜 시절을 담은 엔솔로지를 계산해달라며 카운터로 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건냈다.
"저 중1 때 예전 관취에 견학왔던 사람인데 혹시 기억하세요?"
세상에나.
이전에는 중,고등학생들의 특별활동? 같은 시간으로 책방에 와서 이것저것 다양한 활동들을 했었다. 서점주인에 대해 탐구하는 활동을 하기도 하고, 도서부에서 독립출판물들을 사서 읽어보기도 하는 풍요로운 시간들을 가졌는데 그 때 왔던 친구 중 한명인 것이다.
아무리 동네라도 특별활동으로 견학왔던 서점을 개인적으로 다시 찾는 학생은 없었다. 나 역시도 그런 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3년만에 자발적으로 찾아 온 것이다.
이제는 고1이 된다고했다. 중1 때 왔을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책도 안 좋아했는데 요즘은 책 읽기에 푹 빠져있다며 그동안은 지나가면서 보기만 하고 바빠서 못왔다고 오늘 이 근처를 지나다 생각이 나서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자신의 일상을 짧게 전했는데, 최근에 내가 그 어떤 누구와도 전혀 이야기 한 적이 없는 주제였다. 아련한 어떤 기억들과 감정들로 그의 말에 호응했다. 내겐 아주 어렴풋하지만 아마도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인 그의 일상. 순수한 그 학생의 말들이 참 따뜻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10대를 조용하고도 소란스럽게 보내 온 어른으로서 학교 밖으로 나와있는 청소년들을 보고 있으면 애틋하고 대견하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보인다는 것은 한편으로 내가 너무나 어른이 된 것같아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특히나 이렇게 자기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려는 아이들.
책방을 하다보면 가끔 이렇게 반짝이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잊지않게 기억하자. 작고 소중한 반짝거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