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의궤도

33년이 지나야 비로소 해낼 수 있던 것

글의궤도 1호

by 유영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올 해엔 꼭 자주 책방일기를 남겨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오늘은 마감시간까지 책방에 남아서 글도 쓰고, 브이로그도 편집하고 집에 오고 싶었는데 기분 좋지않은 일이 생겨 1시간 일찍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마셨다.


자주는 아니지만 나는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글을 쓸 때가 종종있다. 술에 취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줄줄이 쓴다. 주량은 쎈 편이지만 취하도록 마시는 일이 없다보니 취기가 올라오는 정도에는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이 생겨 글을 쓴다. (진짜로 취했을땐 그냥 잔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날은 아니다. 그저 맥주 한캔에 털어낼 수 있을 정도의 일이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짜증나는 일이다.


관객의취향은 1,2층으로 운영되고 있어 손님의 목적에 따라 내가 1층과 2층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손님이 책을 사러 온 경우 책을 고르고 계산을 할 때까지 2층에 올라가 있고, 손님이 음료를 테이크할 경우엔 1층에 있다. 1층이든 2층이든 자리를 비우면, 새로 들어 온 손님이 찾을 수 있기에 항상 cctv를 보고 있다.


저녁 7시 안된 시간이었다. 일요일은 손님이 일찍 끊키는 편이라 마감을 슬슬 준비하고 있었는데 책 손님이 왔다. 2층으로 손님을 안내하고 손님이 책을 고르는동안 새 모임 공지를 준비하며 1층 cctv를 확인했는데 어떤 남자분이 들어오셨다.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가는 손님일 듯하여 빠르게 1층으로 내려갔다. 어떤 아저씨 손님이셨다.


음료를 주문하시겠냐고 묻자,

"여기 빵은 직접 다 구워요?" 라고 물었다.


빵을 사려는건가 싶어

"제가 다 구워요. 오늘 구운 빵이에요."


"어떻게 만들어요?"

사실 여기부터 쎄했다.


"버터와 밀가루로 만들죠?"

"어떻게? 어떻게 해요?"

"네? 배워서 하죠."

"아니 우리 딸이 빵을 만드는데... 종이랑 펜 좀 줘봐요."


나는 종이와 펜을 드렸다. 레시피를 써달라는건가 싶었다.

그는 종이에 필기체 영문자 두글자를 썼다.


"읽어봐요. 뭔지 알아요?"

"네?"

"필기체인데 뭔지 알겠어요?"

"k요."

"오오오 맞추네. 필기체 알아요?"

"안써서 잘 몰라요. 그런데 손님 뭐가 필요하세요?"

"근데 잘 읽네. 나 물 좀 줄래요?"

"네?"

"물 한 잔만 주세요."


그는 말을 계속 바꿔가며 자꾸 카운터 안쪽으로 가까이 왔다. 나는 불안했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른이니까 우선 참아본다. 물을 건내고,


"선생님 지금 저희 2층에 손님이 기다리고계셔서 제가 올라가봐야하는데 물 드시고 그만 나가주세요."

라고 최대한 정중한 문장으로 말했지만 나는 안다. 내가 눈으로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그들이 무섭지 않다. 그저 화가 날 뿐이다.


그는 "아 스미마셍. 일본말 써도 돼요? 일본 말 알아요?" 라며 물을 마시지않고 또 시덥잖은 농담을 했다.

나는 더이상 받아주지 않았다.


"선생님 나가주세요. 당장."


나는 이말을 세번쯤 되풀이 했고, 그는 알겠다며 물을 꿀떡꿀떡 삼키더니 나갔다.


그 컵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진 않을까 고민하며 세제로 빡빡 닦아내고, 2층에 계신 손님께 가서 도서를 계산해드리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가게를 하면서 이런 비슷한 일을 종종 겪었다. 어느 덧 4년차 사장이라 쫄진 않는다. 그 당시엔.

근데 그들이 떠나고나면 역시나 심장이 뛰고 무섭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나는 여자 혼자서 점포를 지킨다는 것이 이렇게 위협적인 상황이될것이라곤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카페나 서점 주인이라고 하면 다들 편안하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면서 우아하게 책이나 읽는 모습을 상상하지. 스미마셍에 대꾸해야하는 상황을 상상하진 않으니까.


내가 남자여도 이랬을까. 내가 나이가 많은 여자여도 이랬을까.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때면 늘 이런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고는 너무 화가나고 수치심이 느껴진다. 내가 나를 지키기위해 나는 더 강해져야한다. 계속 그렇게 강해져왔다. 30년 장사한 여사장님들이 왜 그렇게 목소리가 크고 기가 쎈지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다. 그녀들은 살아남기위해 변화해온 것이다. 나는 더이상 그들 때문에 울지 않는다. 내 눈물도 아까우니까.


구청에서 설치해준 안심점포 안심벨이란 것이 있다. 우리 점포엔 안심벨이 있다. 그걸 누를까, 욕을 하고 내쫓을까 순간 고민했는데 욕을 하는 게 먼저 일거란 판단을 했다. 안심벨은 위급한 상황에 벨을 누르면 관제센터로 연결되어 구청과 경찰이 출동한다. 하지만 이런 애매한 상황에선 안심벨을 누를 수도 없다. 그가 직접적으로 내게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니니까. 아 근데 진짜 일을 당하고 나서 벨을 누를 수도 없고, 이런 애매한 상황에선 어느 타이밍에 누르란 말인가.


화가 나서 집에 와 맥주를 마셨는데, 맥주를 마시며 깨달은 것이 있다.

33년이 지나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서운 상황에서도 눈을 똑바로 보고 "나가주세요. 불편하네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지난 숱한 시간동안 말 없이 울기만 하고, 못 본채 지나쳐오고, 빠르게 도망치던 내가 이제는 말한다. 눈으로 욕하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는 일이니 아직은 누구도 못하는 게 당연하다.


[관객의취향_취향의모임_글의궤도_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