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궤도 1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고 차분한 아이.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었던 말이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발표를 하는 게 싫었고, 중학교 때에는 체육 수업이, 해외에서 보낸 학창 시절에는 토론 수업과 조별 과제가 제일로 싫었다. 다른 사람과 한참을 부대끼며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시간을 보내고 나면 에너지가 모조리 빨려 나간 듯한 느낌에 머리가 지끈거리곤 했다. 나도 아직 놀라곤 하는 사실인데 이런 나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 번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일주일에서 이 주간은 휴식을 취해야 하는 나 자신을 잘 알기에 어찌 된 일인지 곰곰이 되짚어보니 지금껏 나는 나를 너무나 잘 연기해온 덕분인 듯싶다. 사회생활을 위한 연극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매일 해나가야 하는 필수 과제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꽤 되었지마는, 나가지 않으면 그만인 목적 없는 모임 혹은 성향이 잘 맞지도 않는 친구들과 우르르 모여 어울리던 때에도 나는 나를 꽤 성실히 꾸며왔다. 수년을 알고 지낸 친구도 나를 사교적인 상황이나 파티를 즐기는 활발한 사람, 조별 과제가 생기면 발표를 도맡아 하는 사람, 토론할 때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의견을 펼치는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으니, 내가 조금 일찍 이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연극영화과에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도 열심히 사람들 앞에 자신을 꾸며내며 무엇을 얻었는가 되돌아보는 일 따위는 그러잖아도 팍팍한 하루에 철학적 고민마저 얹어주어 팍팍함이 두 배가 될 터이니 할 일도 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미래 언젠가의 나에게 미뤄두기로 하자. 대신에 어떻게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껏 이어왔는지에 대한 조금은 더 실용적인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이전까지는 내가 이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 할 정도로 익숙해졌으니 말이다. 지칠 것이 뻔한 자리에 나가기 전 이번에는 이 주 동안은 약속을 잡지 말아야겠군, 따위의 생각을 건조하게 읊조리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그렇게 해서 나간 자리는 영양가 없는 대화에 기름기 가득한 식사, 텅 빈 지갑이 전부인 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곳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답을 찾는 것은 퍽 쉬운 일이었다. 바로 막이 끝날 때마다 지극히 사적인 나만의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앞에서도 조금씩 언급했듯이 나는 한 번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얼마간은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상적인 루틴 외에는 개인적인 약속을 전혀 잡지 않는, 내게 일종의 방학을 주는 것이다. 때때로 엇나가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이 정도 방학을 가지면 되겠다는 나의 예측은 대체로 명중한다. 이때 하는 일은 단 한 가지.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영화를 보는 일은 나에게 있어 단순히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용도나 취미 생활을 넘어 일상 그 자체가 되어있었다.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거나, 영화 마니아들처럼 수백 수천 편을 감상했다거나, 평론가가 되는 것이 목표라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오늘은 쉬어야겠다 싶은 날이면 무조건 영화를 틀어두었다. 영화를 튼 뒤 금세 잠에 빠진 날이 그 중 반절이 넘는다는 사실은 나 혼자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다. 남들은 내가 영화광인 줄 아니까. 그리고 나머지 절반 중 반은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는 경우였다. 나는 이미 여러 번 본 영화를 다시 돌려보는 일이 대부분이라서 보고 싶은 장면만 골라 틀어두곤 했다. 그리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이 또 잠에 빠지고 만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내 동생은 늘 영화를 켜두는 목적이 대체 무엇인지 묻곤 했지만, 그 질문에는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나도 잘 모른 채 그저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니까.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 것인가? 이것 또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순간은 대개 그렇다.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딱히 특별한 이유 없이 감정만 남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좋은 거고 그냥 싫은 거다.
내게 있어 지극히 사적인 공간의 정의는 오롯이 나 홀로 간직할 수 있는 세계,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순간, 편안함을 주는 존재이다. 비록 너무 편안해서 잠에 빠져버릴지라도.... 사과를 전해야 할 감독들이 수십 명은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다 잠드는 것이 꼭 영화를 못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잠들었다는 것은 관객이 편안함을 느꼈다는 것, 편안함을 느꼈다는 것은 그 공간에 자기 자신 홀로 존재하는 순간을 경험했다는 것. 그러니까 그 영화는 누군가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표현을 칭찬으로 사용하곤 한다. 물론 애초에 목적을 수면에 두고 틀어두는 영화의 감독들은 예외이다. 그들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요즈음 우리는 모든 것이 인터넷에 남아 평생 기록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불에 태워버리면 그만이었을 편지나 사진은 카톡과 아이클라우드 형태로 남아 평생 간직된다. 인스타그램 글, 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 텀블러, 각종 커뮤니티.... 전에는 오프라인에서만 행해졌던 연극이 이젠 온라인으로 제 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다. 조금 더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24시간 불특정 다수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일반인일지라도, 그리고 내가 사적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에서마저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는 안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이렇게 써내린 글들도 몇 년 뒤 누군가가 내 앞에 들이밀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 원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자신만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지는 나날인 것 같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오로지 혼자의 것인 순간. 영화를 틀어두는 그 순간이 나를 지극히도 사적인 나만의 공간으로 데려가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며 나 혼자만이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분명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순간 더이상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가 부여한 의미를 거쳐 우리 주변을 에워싸며 공간으로 변모한다. 그 순간들은 때론 보잘것없어 보이며 순식간에 의미가 퇴색되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손길로 소중히 간직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는 곧 산산이 조각나 다시는 나만의 공간으로의 여행을 떠나지 못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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